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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소비자를 움직이는 건 내밀한 본성·욕망이다

BUZZWeb 2011. 4. 30. 15:42

[Weekly BIZ] “소비자를 움직이는 건 내밀한 본성·욕망이다”

미니애폴리스(미국)=김남인 기자 kni@chosun.com 

세계적인 마케팅 전문가 해리 벡위드

 

 

 #1 위 사진은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 '프로방스'(Provence)다. 2008년 이곳에 내로라하는 파스타 애호가들이 모였다. 이 집의 '특별 파스타'를 맛보기 위해서. 시식 후, 예상대로 온갖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한마디로 끝내주네요!" 사실 이 요리는 피자헛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요리사가 만든 것이었다.

 

→ 지난 3일 만난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 해리 벡위드는 말했다. "우리는 기대하는 대로 경험한다. 브랜드를 통해 만들어지는 기대치는 그것 자체가 경험이 된다."

 

#2 20년 전 영국의 켄싱턴 거리는 한마디로 싸구려 엉망진창이었다. 표지판과 가드레일, 얼룩말 무늬로 칠해놓은 횡단보도, 과속방지턱…. 공무원들은 경고를 많이 할수록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상인들은 이 때문에 관광객이 발길을 돌린다고 생각했고 표지판의 95%를 없애기로 했다. 가드레일도 제거했다. 그 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죽거나 중상을 입는 보행자 수가 무려 60%나 감소한 것이다.

 

→ "디자인이 우리 행동을 변화시킨다. 어떤 지역이 수준 높은 디자인을 갖출수록 그 지역 사람들도 교양 있게 행동한다."

 

#3 2008년 필립스 전자가 반품으로 인해 미국 기업들에 발생하는 비용을 측정해봤다. 그 액수는 연간 1000억 달러에 달했다. 그리고 그 절반은 다음 이유로 반품처리된 것이었다. '사용법이 너무 복잡하다!'

 

→ "우리는 단순한 것에 사로잡힌다. 아이팟 셔플이 가진 기능은 네 가지였다. 전원, 볼륨, 다음 곡으로 넘어가거나 이전 곡으로 되돌아가기, 순차ㆍ무작위 재생."

 

#4 125년간 시카고의 타운 스퀘어 역할을 했던 마셜 필즈 백화점은 2006년 9월 9일 '메이시스(Macy's)'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며칠 만에 수천 명의 시카고 사람들이 이 백화점에 발길을 끊었고, 바뀐 이름에 반대하는 시위까지 생겼다. 이 백화점은 20년 전부터 수차례 매각과 인수를 거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 "우리는 익숙한 것을 원한다. 시카고인들의 삶 속에서 마셜 필즈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추억을 의미했다. 우리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낸 브랜드에는 절대로 질리지 않는다."

 

#5 미국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운전자들 때문에 발생하는 교통사고로 골치가 아팠다. 주(州)마다 인식 변화를 위해 열띤 캠페인을 펼쳤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아 끔찍한 사고를 당한 사람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안전벨트를 매시오, 그게 법입니다'라는 협박도 시도했다. 유일하게 성공한 것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메시지였다. '클릭 잇 오어 티켓'(click it or ticket·안전벨트를 매든지 벌금을 내시오).

 

→ "사람들은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 믿는다. 선택의 자유를 존중받는 듯한 느낌이 들면 호감을 보인다."

해리 벡위드는 위의 다섯 가지 예를 들며 "인간(소비자)은 이성적·합리적인 존재라는 가정은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했다. 제품의 성공은 이제 인간의 내밀한 본성·욕망과 닿아있다는 것이다.


“상대가 돈만 생각한다는 느낌을 주는 순간 사람의 마음은 떠난다”
 

▲ 해리 벡위드와 카리부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길 건너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 안은 늦은 브런치를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많은 이가 블랙베리와 아이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받았다. "소셜미디어는 우리 안의 외로움을 건드립니다. 우리는 무엇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하죠." / 김남인 기자

 

지난 3일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카리부 커피숍은 일요일 낮인데도 20개 테이블이 꽉 찼다. 그리고 조용했다. 잊을 만하면 '치익-칙' 에스프레소 머신이 소리를 낼 뿐, 손님 대부분이 혼자 노트북을 펴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일하는 '오피스리스 근로자'(Officeless Worker)가 전 세계 2200만 명 정도 됩니다. 넷북·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이들은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면 어디든 자리 잡고 앉아 일을 하지요. 대부분 서비스업 종사자로, 프로젝트 단위로 일합니다. 창조적이고 생산성도 높지요."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 해리 벡위드는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며 말했다. 기자에게 '일요일 낮 12시, 커피숍'을 제안한 것도 그였다. "나는 전 세계 고객사를 돌아다니며 일합니다, 그 외에는 동네 커피숍에서 일하지요. 요즘 우리 '구루'(guru)들이 일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HP·머크 등 세계 일류기업에서 마케팅 컨설턴트로 활약해온 마케팅 전문가다. 지금은 웰스 파고 앤드 컴퍼니·GM·메릴린치와 일하고 있다. 그가 1997년 쓴 '보이지 않는 것을 팔아라'는 제품이 아닌 서비스를 마케팅한다는 개념을 도입해 뉴욕타임스·비즈니스위크로부터 '최고의 비즈니스북'으로 선정됐다. 그는 올해 초 행동심리학을 마케팅에 적용한 '언씽킹(Unthinking)'이란 제목의 책을 펴냈고, 이는 최근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우리는 내일의 태양을 믿는다

 

"저기 저 아가씨가 보고 있는 'USA 투데이'부터 시작하죠. 저 일간지는 미국인들이 얼마나 '낙관주의'를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1982년 이전에는 흑백 신문이 나쁘고 심각한 소식들을 실었지요. 각종 사건사고나 주식시장 붕괴 같은. 그때 나온 것이 'USA 투데이'입니다. 이 신문은 낙관적인 시각을 전면에 내세웠고, 흑백 톤도 벗어 던졌어요. 저 밝은 청색과 녹색, 붉은 오렌지색 좀 보십시오. 우리가 어릴 때 갖고 놀던 '피셔프라이스'(유아용 완구 브랜드) 색깔을 도입한 겁니다. '뉴스는 재밌고 즐거운 것'이라는 이미지 메이킹 덕에 구독자 수는 빠르게 늘어났지요."

 

―그것만으로 '미국인들은 낙관론자다'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불황의 골이 깊던 2008년, ABC뉴스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75%가 '주변에 직장을 잃거나 임금이 삭감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고 답했음에도, 그 중 3분의 2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라고 답했습니다. 비슷한 설문조사 결과는 얼마든지 있죠. 이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경제위기를 초래했고요."

 

―'긍정의 힘'이야말로 미국 사회가 성장해 온 원동력 아니었습니까?

 

"미국인들은 빚조차 강하게 긍정해버렸습니다. 기업이 사람들을 자르고, 신용카드 한도가 꽉 차버렸는데도 '내일은 더 밝은 태양이 뜰 거야. 돈도 더 많이 벌겠지. 빚은 그때 갚으면 돼' 이런 식입니다. 일반인뿐 아니라 '리스크가 생활'인 금융인들도 그렇게 믿었어요. 미국이 역사적으로 이뤄온 많은 승리가 낙관론이라는 자기최면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미국 TV광고를 본 적 있으세요? '세계 최고' '역사상 가장 좋은'같은 문구들이 수시로 나오죠. 세계적으로 이런 광고가 난무하는 곳은 없어요. 사람들은 몇 초만 운동해도 배가 납작해지고, 주 4시간만 일해도 부자가 될 거라고 믿지요."

 

―미국인들은 2008년 리먼쇼크 이후, 긴 불황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뭔가 교훈을 얻지 않을까요.

 

"노(NO)."

 

―이런 상황이 반복될 거란 말씀입니까.

 

"경제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부는 지출을 늘렸어요. 경기부양책으로 최악의 상황은 벗어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빚으로 뚫린 구멍을 언제까지 메울 수 있을까요. 정부가 긴축으로 돌아서면 많은 비숙련 인구가 다시 직장을 잃을 겁니다. 이들이 돈을 쓰지 못하면 미국 경제는 다시 휘청댈 거고요. 진정한 진전이 없으면, 경제위기의 여파는 지속될 겁니다. 게다가 (정부 지출을 통해) 조금이라도 경기가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면, 미국인들의 그 오랜 습관(낙관주의)이 다시 고개 들 거고요."


◆우리는 특별한 것의 일부가 되고 싶어한다

 

―경제위기 후 마케팅 업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습니까?

 

"소셜미디어를 통해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제 트위터·페이스북으로 홍보하고, 웹사이트에서 바로 물건을 팔지요. 닥터 페퍼는 페이스북에 이미 850만 명의 열렬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매일 자사 홍보 메시지를 띄우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얻죠.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 구글의 에릭 슈미츠 회장 같은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고객과 기업 간 거리를 좁히고 있고요. 트위터 사용자들은 '돈벌이 대상'으로 대접받는 걸 싫어합니다. 트위터는 이용자 간 흥미로운 정보를 주고받는 통로예요. 그곳에서 뭔가를 팔려 해서는 안됩니다. 기업 웹사이트로 가는 통로 역할만 하고, 지갑은 웹사이트에서 열게 하면 됩니다."

 

―전통적인 방법은 이제 힘이 떨어진 건가요.

 

"TV 광고는 여전히 강력합니다. 작년 수퍼볼 기간에 코카콜라는 광고를 했고 펩시는 안 했어요. 그 기간, 펩시 판매가 7% 가까이 떨어져 버렸지요. 소셜미디어가 모든 걸 해결할 것이란 환상은 금물입니다. 그 방법이 통하는 건 따로 있어요. 구글처럼 탁월한 검색엔진을 갖고 있으면, 마케팅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트위터로 '그 검색 엔진 써봤어? 너무 좋아' 입소문이 금세 돌 테니까요. 하지만 회계·의료·보험 서비스 같은 분야는 그런 식으로 차별화가 힘들지요. 심지어 애플 같은 거대 IT기업도 많은 비용을 들여 스티브 잡스가 등장하는 프레스 콘퍼런스를 엽니다."

 

―사람들은 왜 소셜미디어에 열광하는 겁니까?

 

"우리는 외로움을 가장 두려워해요. 무엇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하죠. 미국에서 공동체가 쇠락해가고 있어요. 교회도 더 이상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죠."

 


◆우리는 루저를 사랑한다

 

"사람들이 '평범한 루저'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거대하고 완벽한 것은 경계 대상이 돼요. 애플은 이를 잘 파악했고 '맥(Mac) 대 PC'라는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광고에서 '맥' 캐릭터는 저스틴 롱이라는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헝클어진 갈색머리에 172㎝의 키로, 교실에서 존재감이 없는 학생 같은 캐릭터죠. 반면 PC캐릭터는 롱보다 훨씬 덩치가 큰 배우 존 호지먼이 맡았어요. 애플의 광고는 '골리앗과 다윗'을 연상케 했고 사람들은 작은 루저에 열광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명품이 아닌 빛바랜 청바지에 뉴밸런스 운동화만 신습니다. 단정한 셔츠와 슬랙스(캐주얼한 정장 바지), 빛나는 가죽구두를 신는 MS CEO 스티브 발머와 비교되지요. 잡스는 우리 시대 마케팅 천재예요."

 

―진짜 골리앗은 애플 아닙니까.

 

"설정이 그렇다는 것이죠. 기존 '골리앗'들도 전략 수정에 나서고 있어요. 자기 이름을 숨기고 등장하는 겁니다. 최근 미국에서 인기인 '15번가 커피와 차'라는 커피숍이 그 경우죠. 여기엔 골동품점에서나 본 것 같은 테이블과 의자가 손님들을 맞습니다. 도시인들은 이곳에서 '매끈한 골리앗' 스타벅스가 주지 못한 위안을 얻지요. 사실, 이 매장은 스타벅스의 테스트 매장입니다. 간판을 보면, 아주 작은 글씨로 '스타벅스로부터 영감을 얻다'라고 써있어요."

 

◆우리는 눈에 띄고 싶어한다

 

―소비자의 '마음'을 간파하지 못해 실패한 기업들이 있습니까?

 

"아주 많아요. 크리스피 크림을 예로 들어보죠. 2003년 4월 크리스피 크림의 주가는 1주당 489달러에 육박했습니다. 그 붐을 타고 당신이 1만 달러를 투자했다면, 2010년에는 손에 600달러도 안 남았을 겁니다. 2003년만 해도 크리스피 도넛은 매장이 많지 않아 '아는 사람'만 사먹는 브랜드였습니다. 그 후 경영진은 덩치를 키우기 위해 편의점에까지 도넛을 싼값에 팔기 시작했어요. 구하기 쉽고, 가격까지 내렸으니 판매는 늘 것 같았지만, 사람들은 싸늘하게 등을 돌렸지요. '(이 도넛을 먹는) 나는 특별하다'는 느낌이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우리는 놀고 싶다

 

―성공한 기업들은 사람 심리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습니까.

 

"아이폰은 우리가 얼마나 놀기 좋아하는 존재인지를 잘 포착했어요. 아이폰 화면을 보세요. 어린 시절 갖고 놀던 피셔프라이스 장난감들과 똑같은 색깔을 사용합니다. 기능도 단순하고 재밌지요. 애플 제품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장난감이다!' 2007년 캘리포니아 대학의 울리케 맬멘디어라는 경제학자가 이베이 고객들을 연구한 결과가 있습니다. 구매자들 대부분 '즉시 구매' 버튼을 무시하고, 경매에 참가해 결국에는 더 많은 돈을 내고 물건을 산다는 것이었죠. 그들은 단순한 구매 이상의 뭔가, 즉 경매라는 게임을 원한 겁니다. 이는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였죠."


◆우리는 놀라움을 갈망한다

 

"우리는 또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놀라움'을 좋아합니다. 2008년 코스트코는 웹사이트를 통해서 10.61캐럿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팔았어요. 공인 감정가만 26만5000달러에 달했던 이 반지는 코스트코에서 18만달러에 판매됐죠. 그 결과는? 수백만 명 사람들이 코스트코 웹사이트를 찾았고, 덩달아 다른 물건의 판매도 올라갔습니다. 18만달러짜리 반지 덕에 비싼 물건의 기준이 달라진 거예요. 1000달러짜리 물건도 저렴하게 느껴지는 거죠."

 

―수십년간 마케터로 일하셨습니다. 경영자들 입장에서 훌륭한 마케터를 뽑는 방법이 있다면요?

 

"'스무드 토커'(smooth talker·말을 매끄럽게 잘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세요. 훌륭한 마케터는 말수가 적습니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전략을 짜느라 머릿속이 늘 분주하니까. 부리기 쉬운 사람도 피하세요. 유능한 마케터는 상상력이 풍부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거대한 진보에는 늘 리스크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편한 길로 가지 않죠."

 

그도 '스무드 토커'는 아니었다. 말수가 적은 것도 아니었다. 직설적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한국에서는 영어를 언제부터 배웁니까?"라고 물었다.

 

"LPGA가 주최한 미팅에 참가했는데, 스무 명의 한국 여성 골퍼가 통역사와 맨 뒷자리에 모여 있더군요. 미팅 내용을 따라가는 이는 박세리뿐이었어요. 그러면 팬과 관계 맺기 힘들어요. 그게 경기력에 도움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경기는 즐겨야 해요.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자꾸 드러내야 하는 겁니다."

 

* 출처 : 조선일보, 2011.04.29 1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