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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자이 바다'에 빠지다...섬상·노크라·

BUZZWeb 2009. 6. 1. 10:45

휴대폰서 영화·드라마까지… 중국 '산자이 바다'에 빠지다

섬상·노크라·바이글… 진짜 못잖은 경쟁력 지녀
10분의 1 가격으로 동남아·러시아 등 수출 인기


중국 베이징에 근무하는 지인의 이야기다. 그는 최근 고가의 휴대전화를 분실했다. 주재 기간이 1년도 남지 않아 같은 성능의 고가 제품을 구입할지, 성능은 떨어져도 저렴한 제품을 구입할지 1주일 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중국인 친구가 선물이라며 넌지시 휴대전화 한 대를 건넸다. 한눈에 보니 ‘SAMSUNG’(삼성)이라는 로고가 선명했다. 놀라운 것은 그 때부터였다. 이메일 열람, QQ(중국의 채팅 사이트) 접속이 가능한 휴대전화의 가격이 같은 성능 제품의 10분의 1∼8분의 1 정도인 500위안(약 10만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믿기지 않아 다시 한번 찬찬히 브랜드를 훑어보니 ‘SAMSUNG’이 아니라 ‘SUMSANG’(섬상)’이었다. 산자이(山寨) 휴대전화였던 것이다.

 

 

◇섬상                                                               ◇바이구후


◆산자이 제품의 범람=중국은 지금 산자이의 바다에 빠져 있다. 산자이란 명품 고가 브랜드의 대척점에 서있는 저가 모방 제품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산자이를 명품 브랜드를 단순히 모방한 ‘짝퉁’과 유사한 뜻으로 오해한다. 우리도 ‘나이키’ 대신 ‘나이스’, ‘아디다스’ 대신 ‘아디도스’가 풍미하던 때가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산자이는 짝퉁 그 이상의 것이다.

 

우리말의 ‘산채’라는 뜻의 산자이의 사전적 의미는 산에 돌·목책을 둘러친 터나 산적의 소굴을 말한다. 중국에서도 산자이는 원래 ‘수호전’에 나오는 산적의 소굴이라는 의미다. 정부의 관할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있다.

 

월간 ‘중국(中國)’의 위리리(于麗麗) 기자는 “산자이라는 단어가 중국어에서는 (산적의 소굴과는) 또 다른 뜻으로 해석된다. 광둥어에서 기원한 이 단어는 소규모나 지하공장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 특징은 모방성, 신속화, 서민화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무명 기업이 세계적 브랜드에 대항하는 모습에서 많은 외국인은 옛날 산채의 호걸이 정부에 대항하는 것을 연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산자이가 처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무렵이다. 광둥성 광저우(廣州)나 선전을 중심으로 NOKIA를 모방한 NOKLA, 삼성을 모방한 SAMSANG 등의 브랜드가 대량 유통되면서부터다. 산자이 휴대전화가 급속히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적인 브랜드와 비슷한 외형과 성능을 갖췄으면서도 가격이 엄청나게 쌌기 때문이다.

 

특히 2007년 10월부터 중국에서 휴대전화 생산 면허제도가 폐지됐다. 일정한 품질 기준만 갖추면 산자이 제품의 합법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자 산자이 휴대전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휴대전화를 중심으로 시작된 산업계의 산자이 현상은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산자이MP3, 산자이TV, 산자이노트북으로 확산하고 있다. 산자이 제품만 소개하고 거래하는 전문 사이트도 등장했다.

 

일부 내수 휴대전화 제조업체는 산자이 업체와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아예 산자이 업체로 변신하기도 했다. 세금이나 애프터서비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또 기술력을 인정받은 산자이 휴대전화는 명품 브랜드의 10분의 1 가격에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러시아로 당당히 수출돼 현지 소비자의 환영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산자이 제품의 해악을 경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산자이 산업이 기본적으로 다른 해적판, 짝퉁 제품과 마찬가지로 공정경쟁의 룰을 무너뜨리는 ‘약탈 경제’의 기초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다수 산자이 기업이 비교적 높은 성능을 가진 저렴한 제품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킨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환경·에너지 문제와 소비자 보호 문제 등 장기적인 경영 전략을 경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저우화젠                                                                ◇산자이 저우화젠

 

◆산자이 문화로 확대 재생산=산자이 휴대전화에서 시작된 중국 산업계의 산자이 현상은 산자이 문화로 확대·재생산되는 양상이다.

 

TV드라마, 영화, 출판 분야에서도 산자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6년 인기를 모았던 TV 드라마 ‘소년 포청천’은 일본 만화의 산자이판. 2007년 인기 드라마 ‘집에는 아들 딸이 있다(家有兒女)’는 미국 드라마의 산자이판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인터넷에도 다양한 산자이 웹사이트가 나오고 있다. 세계 최고의 검색사이트인 구글(google)과 중국어 최대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baidu)를 합친 ‘bigle’의 출현에 이어 “‘baigoogledu’, ‘goobaidugle’이 나타나더니 이제는 바이두, 구글, 야후(yahoo)를 한데 묶은 ‘baigoohoo’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명 스타의 산자이판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안재욱이 불러 우리에게도 친숙한 중국 노래 ‘친구(朋友)’의 가수 저우화젠(周華健)이나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희극인 샤오선양(小瀋陽), 인기 여배우 판빙빙(范氷氷)의 산자이판이 속속 등장했다. 일부 산자이 스타는 대중의 인기를 얻자 제품 광고도 촬영했다.

 

산자이 문화의 확대와 함께 주류에 대항하고 권위에 도전한다는 의미의 ‘산자이+○○’의 형태의 새로운 합성어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산자이 춘만(春晩·중국중앙TV에서 해마다 설에 방송하는 인기 프로그램), 산자이패션, 산자이관료, 산자이대학, 산자이오바마, 산자이홍루몽은 물론 산자이공화국, 산자이 인민일보(人民日報)도 등장했다. 이에 따라 산자이는 지난해 중국의 최고 인기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중국의 산자이 문화에 대해서도 내부 논란이 뜨겁다. 불법적인 모방과 표절이라는 비판론과 모방을 통한 재창조라는 옹호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배우 출신인 니핑(倪萍)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최고 국정자문기구 격) 위원은 지난 3월 전국정협 제11기 2차 회의에서 “산자이는 민간 문화와 풀뿌리 문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상당 부분은 모두 표절, 위조, 가짜”라며 “법률과 행정 규제를 통해 강력히 제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체 종사자인 페이위(裵鈺)도 “입법적인 면에서 산자이 제품에 대해 형사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벌금과 함께 영업허가서를 압수하고, 필요하다면 행정적인 처벌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론도 만만찮다. 궁한린(鞏漢林) 정협위원은 “30년의 개혁개방을 거치며 중국 사회는 점점 다양한 문화의 출현을 받아들이고 있다”며 “사람들의 관념도 이미 산자이를 포용할 정도로 개방됐다”고 옹호했다. 중국 인민대 왕펑(王鵬) 교수도 “현재 쏟아지는 산자이 문화는 시대의 필연적 추세”라면서“ 인터넷의 등장으로 여러 가지 자조식, 조롱식 서민예술의 탄생을 촉진시켰다”고 말했다.

 


◇판빙빙                                                                    ◇산자이 판빙빙

 

◆중국 사회의 모순 반영=산자이 제품의 생산과 소비, 산자이 문화는 악화되는 중국사회의 빈부격차와 문화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13억 중국 인구의 3분의 2를 점유하는 농촌(농민 및 농민공) 소비자는 산자이 제품과 산자이 문화의 최대 생산자이자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사회의 바닥을 형성하는 이들 계층은 소비력도 낮고 교육 수준도 낮다. 이들의 문화는 그동안 중국의 주류 문화에 융화되지 못했다. 오히려 주류 문화에 의해 파괴되거나 소외, 배척당했다.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국에서는 빈곤층의 산자이 문화는 부유층의 생활 방식을 풍자하고 조롱하면서도 이를 숭배하고 모방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중산층, 상류층에서도 비슷한 의미의 ‘산자이화’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 사회는 1978년 개혁·개방 이래 30년간 고도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물질적인 성장에 비해 중국 자체의 중산층 문화, 상층 문화가 형성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중산층, 상류층은 자신들의 문화를 서구에서 찾고 있다. 그 통로가 되는 것이 외국의 드라마를 모방한 산자이 드라마와 같은 것이다. 결국 중국 사회 전체가 산자이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 출처 : 세계일보,  2009.05.31 (일)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