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400개의 엉덩이’…번역연재 이상빈 교수
아녜스 지아르의 ‘400개의 엉덩이’를 번역 연재하는 이상빈 교수(문학박사)
아녜스 자아르를 대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문학, 미술, 페미니즘, 성, 일본과 유럽, 역사 사이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그녀의 정체성을 차라리 규정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녀의 주 관심사가 분명 섹슈얼리티이지만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대단히 탐미적이며, 문화적이다. 그러기에 성 문제를 다루면서도 마치 학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전혀 천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유머와 기지, 박학과 우아함을 동시에 구비하고 있는 까닭에 끝까지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으며, 대단히 독창적이다.
또 그녀의 글에서는 무엇보다도 자유로움이 강하게 느껴진다. 성에 관련된 모든 주제를 거침없이 다루는 그녀의 글들에서는 그 어떤 자기 검열이나 수줍음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그녀는 지독한 페미니스트이자, 성을 통해 사회적 약자, 성적 소수자 문제와 싸우는 휴머니스트이다.
그녀를 우연히 찾아낸 것은 프랑스 유수 일간지 ‘리베라시옹’을 통해서다. 적지 않은 책을 읽어왔던 나에게도 지아르가 보여주는 내공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독서광 아버지와 자유분방한 작가를 전공한 어머니를 부모로 두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접하면서 그녀 모습이 이해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섹슈얼리티를 망라한 지아르의 해박한 지식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이 그녀의 글들에 열광하고 있을지라도 성에 대한 잣대가 여전히 이중적인 우리 사회, 성에 대한 담론이 전혀 ‘노골적’이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그녀 모습이 어떻게 수용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연재를 통해 우리는 성에 대한 서구 쪽의 성숙도를 접할 것이고, 우리 문화 수준을 가늠해볼 것이며, 예술과 성, 성과 사회, 성과 정치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한껏 누리게 될 것이다.
마음껏 즐기시라, 그녀의 글들을.
▶이상빈 약력
한국외국어대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외국어대 외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과 불어과 대우교수를 거친 후 한국프랑스문화학회 편집위원,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수석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현재 서울대와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현대 프랑스 문화사전’ ‘교차된 시선’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나폴레옹의 학자들’ ‘간디가 온다’ ‘롤랑바르트가 쓴 롤랑바르트’ ‘예언자, 죄인 그리고 성인들의 이야기’ ‘동성애의 역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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