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기억의 편집' 가능해지나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뇌세포의 기억 작용을 촉진하는 효소와 이 효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물질이 발견돼 사람의 기억을 지우거나 강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이 6일 보도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서니 다운스테이트(SUNY Downstate) 의료센터 연구진은 최근 기억 보존에 기여하는 효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약물을 동물에 주입해 기억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진을 이끄는 토드 색터 박사에 따르면 연구진은 작은 방에 설치된 감전 장치를 피해가는 방법을 익힌 쥐들에게 'ZIP'라는 이름의 약물을 투여하자 쥐들이 감전 장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 약물은 뇌세포의 기억 작용을 강화하는 'PKMzeta'라는 효소의 작용을 방해함으로써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색터 박사는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동물을 대상으로 이뤄졌지만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PKMzeta 효소의 작용을 방해함으로써 나쁜 기억을 지우거나 효소 작용 촉진으로 치매 등 기억 장애를 고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하버드대의 신경생물학자인 스티븐 하이먼 박사는 "기억 편집의 가능성은 거대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나쁜 행동에 대한 건전한 공포는 양심의 기초가 되는데 약물로 범죄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이 올바른지, 또 고통스런 기억을 지울 때 이와 관련된 다른 중요한 기억도 지워질 가능성의 문제 등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콜럼비아대의 신경과학자인 에릭 캔들 박사는 "기억에 관한 연구에서 우리는 거대한 산맥의 자그마한 언덕에 겨우 올라섰다"며 "과학의 다른 영역과는 달리 개인이나 소그룹이 중요한 기여를 할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다"고 말했다.
NYT는 과학자들이 기억에 대한 연구의 거대한 산맥을 오르기 시작하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바꿔놓을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 출처 : 연합뉴스, 2009-04-0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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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기억 편집
지난 2000년 동안에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무엇일까. 지구촌 지식인들에게 물었다. 대답은 저마다 달랐다. ‘비행기, 컴퓨터, 인도나 아랍의 숫자체계, 시계, 피임약, 대학, 기독교와 이슬람교, 거울, 미적분, 깃발, 교향악단, 아스피린….’ 열거해 놓고 보니 인류는 숨가쁘게 뭔가를 만들어왔다. 하나하나가 인간의 삶을 바꿔놓았다. 그중 미국의 작가이며 평론가인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지우개를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꼽았다. 뜻밖이지만 이유를 새길 만하다. “컴퓨터의 ‘del’키, 화이트, 헌법수정조항, 그밖에 인간의 실수를 수정하는 모든 것을 꼽고 싶다. 이렇게 뒤로 돌아가서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면 과학적 모델도 없었을 것이고 정부, 문화, 도덕도 없었을 것이다. 지우개는 우리의 참회소이자, 용서하는 자이며, 타임머신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우리네 기억 속에 들어있다. 그러나 기억 용량은 너무나 작다. 나를 거쳐 간 사람과 사물 중 극히 일부만을 저장하며, 그 저장된 기억들을 수시로 꺼내 새김질할 뿐이다. 우리가 기억을 불러내어 그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아슬아슬하다. 사는 것은 따지고 보면 늘 무엇인가를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지우개는 과거를 비우는 마음일 수도, 과거가 벗겨지는 세월일 수도 있다. 지운다는 것은 다시 시작함이다. 지울 수 있다는 것은 다시 시작할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지우려 하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평생을 따라다니며 몸과 정신을 갉아먹는, 정말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그것은 세월의 빗질에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불쑥 불쑥 튀어나와 아프게 찌른다. 사람들은 그런 기억 몇 개쯤은 마음 또는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기억을 없애거나 재생시킬 수 있는 물질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서니 다운스테이트 의료센터 연구진이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쥐들에게 약물을 투여해서 기억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고 뉴욕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이번 연구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하면 ‘기억의 편집’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은 증폭시켜 저장한다면 우리네 삶은 행복해지는 것일까. 그러나 인간의 기억 속에는 한 세상이 들어있으니 결국 세상을 편집하는 일이다. 두려운 일이다.
<김택근 논설위원>
* 출처 : 경향신문, 2009-04-09 17: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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