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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책의 운명

BUZZWeb 2011. 8. 30. 11:07

책의 운명

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구상에 애서가들이 존재하는 한, 종이책의 소멸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한 권의 책을 내려놓지 않을 터이므로. 그러므로 다시 묻는다.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반원이 얽혀 새의 깃털을 추상화한 목걸이는 오와조 드 파라디 네크리스, 새의 날갯짓과 깃털을 형상화한 반지는 오와조 드 파라디 링, 팔찌는 팔미르 브레이슬릿. 모두 반 클리프 아펠 제품. 그리고 2007년 열린책들에서 발간한 <도스또예프스키 전집> 제3판 가운데 수집가용으로 제작한 210질 중 164번 전집.

 

“지난 5백 년 동안 책이라는 물건의 형태에는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기능과 구성 체계는 변함없었습니다. 책은 수저나 망치나 바퀴, 또는 가위 같은 것입니다.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그런 물건들 말이에요. 수저보다 더 나은 수저는 발명할 수 없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장클로드 카리에르, 〈책의 우주〉 권두 대담 中

 

책은 (결코)죽지 않는다. 움베르토 에코는 책은 언젠가 사라지리라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줄기차게 똑같은 질문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단언한다. 책은 지난 5백 년에 걸쳐 자신의 효율성을 이미 증명했다고. “어쩌면 책을 이루는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변할 수는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책장이 더 이상 종이로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책은 지금의 그것으로 남아 있게 될 겁니다.” 에코 또한 인정한 대로 실로 많은 영역에 걸쳐 엄청난 편리함을 가져다 주리라 예상되는 전자책은 이미 작년의 킨들 붐에 이은 아이패드 판매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세를 넓혀 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다시, 에코가 말한다. “나는 여전히, 독서의 모든 요구 조건에 가장 잘 맞는 기술을 갖춘 전자책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의문이 들어요.” 비단 러시아 문학뿐만이 아니다. 당신은 플로베르를, 보르헤스를, 김수영과 박상륭을, ‘파일’로 읽어낼 자신이 있는가? 만일 진실로 그렇다면, 당신이야말로 새로운 독서 행위를 통해 기존 문학의 전복을 꿈꾸는 작가 피에르 바야르의 암약하는 제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겠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실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무관할지도 모르겠다. 종이책은, 사라져 간다. 하루하루 소멸해간다. 세월에 굴복해 책장이 바스러지는 지경에 이른 헌 책을 바라보노라면 책의 영속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에코의 반전. 현대의 매체들은 빠른 속도로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가고 있다. 특히 저장 매체의 경우 이를 재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이에 비하면 에코가 집에 불이 날 경우 들고 나올 단 한 권의 책, 1490년판 베른하르트 폰 브라이덴바흐의 〈성지 순례〉(목판화 도판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고 한다)는 실로 얼마나 간편하면서도 오래 가는 저장 매체인가!

 

그러므로 문제는 책의 ‘소멸’ 이 아닌 책의 ‘실종’이다. 플로베르의 〈애서광 이야기〉 속 비블리오마니아처럼 ‘비장의 책’만을 위해 살지않는 이상, 평범한 애서가들의 근본적인 소유욕은 어느 날 불현듯 책이 실종되는 데에 대한 불안감에서 일차적인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개의 책이란 출간되자마자 확보해두지 않으면 어느 날 문득 취를 감춰 품절 내지는 절판이라는 딱지를 달기 십상이다. 게다가 심지어 해당 출판사마저 출간한 책을 보관해 두지 않기도 한다. 헌책방을 헛되이 순례한 끝에 지면 복사라도 하고 싶으니 책을 빌릴 수 없겠느냐는 문의 전화를 걸어 본 독자라면 속사정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출판사 열린책들의 대표 홍지웅은, 한 권의 책을 펴낸 후 총 다섯 부를 보관한다. 세 부는 단단히 싸매 파주 사옥 집무실의 보관용 박스에 쟁여 두고, 한 부는 사옥 창고에, 나머지 한 부는 집에 보관한다. 25년간 발행한 초판본들을 이렇게 관리해 왔다. 사실 이러한 관리의 묘는 대표 개인의 고유한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학생 시절에는 읍내 5일장에 선 리어카를 뒤적이며 만화책 수백 권을 모으고, 중학교 때는 뤼팽과 홈즈 전집을 모았던 홍 대표의 장서 관리 역사는 대학 입학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손바닥만한 고무인을 파서 구입하는 모든 책의 앞뒤 면지에 자신의 인장을 찍고, 책에 일련번호를 매긴 후, 장서 목록과 대여 노트를 만들어 일일이 기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에 심취했던 그는 혹 언젠가 ‘도스토예프스키학’이 국내에 도입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모으다 보니 각 나라의 다양한 작품 판본들부터 비평 자료집과 잡지까지, 어느덧 방대한 컬렉션을 갖추게 됐다. 그리하여 당시 도스토예프스키로 논문을 쓰고자 하는 전공자라면 반드시 그를 찾았다는 후문. 이렇게 모은 각국의 판본과 자료들을 세세히 비교 분석한 결과는 훗날 열린책들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펴내는 데 귀한 자산이 됐다. 또한 올해 초에는 그가 1976년 구입했던 E.H. 카의 첫 저서 〈도스또예프스키 평전〉을 번역 출간했으니, 무려 35년간의 보관 끝에 모종의 결실을 맺은 경우라 하겠다. 그러나 막상 대표에게 애서가로서의 변을 청하니 자신은 애서가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답이 돌아온다. 다만 무언가를 일부러 버리지는 않으며, 평소 매사를 정리하고 기록하고 매뉴얼화 하는 습관을 들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 출판사의 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것이라 판단하는 이 기록광 내지는 수집광은 그의 말마따나 애서가는 아닐지언정 분명 어느 지점에서 여느 애서벽을 넘어선다.

 

한편 디자인 서적 및 소규모 독립 출판물들의 창구인 서점 더북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를 운영하는 임경용, 구정연 커플은 결혼과 더불어 서로의 서재를 합쳤다(참고로 〈서재 결혼시키기〉의 저자인 편집자 앤 페디먼과 그의 남편은 안 지 10년, 함께 산 지 6년, 결혼한 지 5년 만에 책을 한데 섞었다). 각자 영화와 미술을 전공하다 보니 인문학과 철학 서적이 겹쳤는데, 이렇게 중복되는 책들은 눈에 띄는 대로 주변에 선물했음에도, 어딘가에는 같은 책이 두 권 꽂혀 있을 것이다. 이 두 권의 본래 소속은 외양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말끔한 쪽은 구정연의, 손을 탄 쪽은 임경용의 소유다. 하나의 상품으로서 책을 깨끗이 다루는 태도를 견지하는 구정연은 절판된 책이나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만든 책의 경우 래핑해 보관한다. 반면 임경용은 책을 사자마자 일단 면지 하단 중앙에 구입 날짜와 이름을 적은 후 읽어가며 귀퉁이도 접고, 연필로 줄도 긋는다. 이는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책 위에 이 책과 내가 같은 운명임을 천명하는 나름의 중요한 행위였건만, 책을 깨끗이 다루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한 권’을 공유할 경우, 후자가 전자에 맞춰야 함은 자명하다. 한편 ‘래핑’ 행위에도 일장일단이 있다. 소중한 책이라는 이유로 고이 포장해 둘 경우 오직 보관만이 목적이라면 모를까, 외려 아예 꺼내보지 않게 되기도 할 것이다(그리하여 일본의 어느 애서가들은 애초에 두 권을 사서 한 권은 보관용, 또 한 권은 열람용으로 쓴다). 지식의 기록을 널리 공유하기 위해 고안된 발명품인 책은 이렇듯, 아이러니하게도, ‘내 것’으로 삼고픈 강한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어쨌든 이렇게 책을 합친 이들은 눈에 띄는 빈 공간에 책을 꽂았다. ‘분류 없는 분류’내지는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분류 체계’를 기준 삼은 이 서가 정리 원칙은 이들의 집뿐만 아니라 서점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논리는 이렇다. ‘분류’란 무언가를 자기화하는 다분히 자의적인 방식으로, 이를테면 대형 서점의 경우 책들을 상품형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더북소사이어티는 개인이 구축한 서재의 개념이므로, 자유롭게! 이러한 원칙 아닌 원칙을 고수하는 가운데 책의 크기와 형식 등 물리적 조건이 자연히 공간을 구분짓기도 한다. 다만 침실에서의 원칙만큼은 확고하다. 오직 (1백 권 가량의)만화책.

 

이렇듯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책의 실종’을 막고자 부단히 노력중인 세상의 모든 애서가들에게 묻는다. 이제,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당신이 마음을 비우고 책의 원형, 즉 지식의 공유를 위한 완전한 발명품으로서 책을 바라본다면, 장고 끝에 결국은 눈물을 머금고 ‘애장’ 이라는 미명의 틀을 벗겨내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책의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당신은 자연히 책의 ‘대여’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일찍이 “책(冊)만은 ‘책’ 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했던 작가 이태준은 수필집 〈무서록〉 속 글 ‘冊’에서, 책을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에 대한 생각을 설파한 바 있다. “가끔 책을 빌리러 오는 친구가 있다. 나는 적이 질투를 느낀다. 흔히는 첫 한두 페이지밖에는 읽지 못하고 둔 책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속삭여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버리러 가기 때문이다. 가면 여러 날 뒤에, 나는 아주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 그는 한껏 피로해져서 초라해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친구는 고맙다는 말만으로 물러나지 않고 그를 평가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에 그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는 수가 많다. 빌려 나간 책은 영원히 ‘노라’가 되어버리는 것도 있다.” 아무래도 책은 사서 읽어야 하는 것일까? 다시, 이태준의 (뒤통수를 치는)한마디. “그러나 책은 역시 빌려야 한다. 진리와 예술을 감금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에 불과하다. 5만 권의 장서를 소유한 에코조차 탐내는 최초의 인쇄본 ‘구텐베르크의 성서’까지야 아니더라도, 품 안에 두고픈 책이 없을 수는 없다. 구차하나마 복사본으로 챙겨둔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국내 번역본, ‘할 말을 잃게 만드는’시 ‘김일성만세’가 수록된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 열화당에서 언젠가 펴낼 보들레르 전집, 그리고 올해와 내년 출간될 로베르토 볼라뇨의 대표작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2666〉… 아무래도 ‘무소유’는 다른 이의 몫인 듯하다.

 

그리고,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 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궁극의 질문. “죽고 나서 자신의 서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에코의 신작 〈책의 우주〉 마지막 장(章)을 갈음하는 이 질문은 아직 갈 길이 먼 어설픈 애서가로서는 요원한 질문인 바, 다만 ‘기증’이라는 단어가 막연히 떠오른다. 그런데 이 기증 문제를 두고 에코는 우리 애서가들의 정곡을 찌른다. “내 컬렉션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물론 그것이 흩어지는 걸 원치 않아요. 우리 가족이 그걸 어떤 공공 도서관에 기증하든지, 혹은 어떤 경매를 통해 팔 수 있겠죠. 이 경우, 예를 들면 어떤 대학교 같은 곳으로 가서, 컬렉션 전체가 통째로 가야 합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에요.” ‘컬렉션’이 담보된 기증이 꼬리를 문다면, ‘바벨의 도서관’은 영영 문을 열 것이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책은 바퀴와도 같은 것입니다.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이상의 발전이 불필요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책에 대한 한 석학의 견고한 믿음이 책의 운명을 거듭 예언한다. 책은, 바퀴와도 같다.

 

에디터 : 객원 에디터 / 김뉘연

포토그래퍼 : 이명수

기타 : 제품 협찬 / 반 클리프 아펠

 

 

* 출처 : VOGUE, 2011년 0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