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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경제]레몬은 어떻게 가려낼까?

BUZZWeb 2010. 7. 20. 11:44

정글경제의 원리 열여섯번째 질문 :

레몬은 어떻게 가려낼까?

 

 카푸친 씨는 중고차를 사고 싶다. 하지만 겉만 멀쩡하고 속은 골병이 든 차를 사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차 값보다 수리비가 더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예 그만둘까 생각하고 있다. 재규어 씨는 10년 동안 감기 한 번 안 걸린 건강 체질이다. 그는 10년 동안 접촉 사고 한 번 안 낸 모범 운전자다.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어가는 건강보험료나 부주의한 운전자들을 도와주는 것 같은 자동차보험료를 생각하면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보험을 안 들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중고차시장과 보험시장의 레몬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애컬러프(George Akerlof)는 일찍이 이런 딜레마에 주목했다. 그가 1970년에 내놓은 ‘레몬시장’에 관한 논문(The Market for “Lemons”: Quality Uncertainty and the Market Mechanism)은 비대칭정보(asymmetric information)의 문제를 꿰뚫어본 혁명적인 저작이다. 정보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 문제는 거래 상대방 가운데 어느 한 쪽이 더 많은(더 좋은) 정보를 갖고 있을 때 생긴다. 정보비대칭은 시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어떤 시장은 이 문제 때문에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림 설명 ] 에두아르 마네의 '레몬'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애컬러프가 명쾌하게 정리해준 중고차시장의 비대칭정보 문제부터 살펴보자. 이 시장에는 겉은 멀쩡해도 속은 문제가 많은 불량 차와 속까지 정상인 차가 섞여 있다. (경제학자들은 흔히 불량 차를 겉보기에는 좋아도 속은 쓰고 신 레몬에 비유한다. 정상 차는 속이 달콤한 복숭아나 자두에 비유한다.)

 

중고차시장에서 정상 차를 팔려는 이는 1,000만원, 레몬 차를 팔려는 이는 200만원을 받으려 한다고 하자. 또한 정상 차를 사려는 이는 1,200만원, 레몬 차를 사려는 이는 300만원까지 낼 뜻이 있다고 하자. 차를 팔고 사는 쪽 모두 어느 차가 정상이고 어느 차가 레몬인지 분명히 알 수 있으면 문제가 없다. 정상 차는 1,000~1,200만원에, 레몬 차는 200~300만원에 거래가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사는 쪽에서 정상 차와 레몬 차를 구분할 길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매물로 나온 중고차의 값어치를 넘겨 짚을 수밖에 없다. 정상 차와 레몬 차가 반반씩 섞여 있다면 중고차 가치의 기대 값(expected value)은 750만원이다. [(0.5)1,200+ (0.5)300=750] 그렇다면 이 기대 값에 따라 거래가 이뤄질까?


사는 쪽에서 750만원을 제시하면 레몬 차 주인은 ‘이게 웬 떡이냐’며 냉큼 팔아 치우려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정상 차 주인은 ‘장난치는 것이냐’며 당장 매물을 거둬들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매수자들은 300만원 이상 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시장에서 정상 차는 모두 자취를 감추고 레몬만 남게 된다. 품질이 나쁜 상품이 좋은 상품을 시장에서 완전히 몰아내버린 것이다. 이처럼 정보비대칭 때문에 열등한 상품을 선택하게 되는 걸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라 한다.


보험시장에서는 공급자의 역선택이 나타난다. 보험 가입자가 안고 있는 리스크(risk)를 보험회사가 다 알 수 없는 정보비대칭 때문이다. 보험회사가 자동차 사고나 화재, 도난 사고, 또는 큰 병에 걸릴 리스크가 높은 계약자들에게는 높은 보험료를 물리고 리스크가 낮은 이들에게는 낮은 보험료를 물릴 수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보험회사는 누가 리스크가 높고 누가 낮은지 다 알 수 없다. 보험회사가 가입자들의 평균적인 리스크 수준에 맞춰 보험료를 매겼다고 하자. 이 경우 리스크가 낮은 이들은 보험료가 너무 높다며 계약을 마다할 것이다. 반면 보험료에 비해 리스크 수준이 높은 이들만 서둘러 (지나칠 정도로 많은) 계약을 하려 할 것이고, 그 계약을 다 받아주다 보면 보험회사는 결국 파산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중고차의 불량이나 보험 가입자의 리스크 수준과 같은 감춰진 특성(hidden characteristics)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감춰진 행동 (hidden action)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는 보험 가입자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얼마나 긴장하고 주의를 기울일지 알 수 없다. 자전거 도난 보험에 든 이가 자물쇠도 채우지 않고 아무 데나 자전거를 세워 놓는 것과 같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가 생긴다.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의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모두가 정보비대칭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정글전자가 입사 지원서를 낸 카푸친 씨의 자질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알 수 없을 때, 정글전자 주식을 산 투자자가 이 회사의 기업가치에 대한 내부정보를 속속들이 알아볼 수 없을 때, 정글전자 주주들이 대리인(agent)인 경영진의 성실성을 확실히 믿을 수 없을 때, 정글전자에 돈을 빌려준 은행이 이 회사의 신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기관투자가들이 정글전자에 대한 대출을 바탕으로 한 증권화(securitization) 상품의 위험을 가늠하지 못할 때에도 정보비대칭에 따른 문제들이 나타난다.


카푸친 씨가 은행 당 5,000만원까지 예금 지급을 보장하는 예금보험제도만 믿고 재무상태가 건전한 은행을 애써 찾아 다니지 않는 것이나, 대마불사(too-big-to-fail)형 금융회사들이 위기에 빠지면 정부가 구제해줄 것으로 믿고 무리하게 리스크를 떠안을 때도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생긴다. 금융시스템에 뿌리 깊은 도덕적 해이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지적도 많다.
 

 

졸업장의 신호효과는 얼마나 될까

 

[그림 설명] 대학 졸업생들이 학위수여식이 끝난 뒤 서로 헹가래를 쳐주며 즐거워하고 있다. 
 
 애컬로프와 함께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와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복숭아나 자두와 섞여 있는 레몬을 골라내는 법을 연구했다. 스펜스는 정보를 가진 쪽에서 정보를 갖지 못한 상대방의 믿음을 얻기 위해 보내는 신호하기(signaling)를, 스티글리츠는 정보를 갖지 못한 쪽에서 상대방의 정보를 드러내도록 하는 가려내기(screening)를 연구했다.


카푸친 씨가 입사 면접 때 세련된 패션 정장을 입는 것도 어떤 신호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명문 정글대학을 나온 재규어 씨가 기대할 수 있는 졸업장효과만은 못할 것이다. (졸업장효과 또는 학위효과를 뜻하는 sheepskin effect라는 말이 있다. 이는 과거 졸업장을 양 가죽에 쓴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2009년 2인 이상 도시근로자가구 중 가구주가 대학 졸업자인 가구의 한 달 평균 소득은 434만원으로 고등학교 졸업자 가구(284만원)보다 52% 많았다. 2003년에는 대졸자 가구 소득(328만원)이 고졸자 가구(235만원)보다 39% 많았다. 물론 이런 소득 격차에는 단순한 졸업장 효과뿐만 아니라 학습능력과 생산성 향상 효과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정상 차 주인은 고장이 나면 수리비를 보상해준다는 보증(warranty)을 통해 레몬 차 주인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중고차 판매업체가 비싼 매장을 만들고 믿음을 주는 브랜드(brand)를 가꾸기 위해 투자하는 것도 레몬을 파는 업체가 흉내 낼 수 없는 신호다.

정글전자가 단지 소비자의 믿음을 사기 위해 비싼 기업 이미지 광고를 하는 것도 신호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는 개별 기업에게는 정보비대칭 문제를 줄일 수 있는 전략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낭비일 수도 있다. 생산성 향상은 없고 졸업장효과만 기대할 수 있는 학위 취득도 사회적인 낭비가 될 수 있다.) 정글전자 경영진은 일부러 빚을 얻어 투자함으로써 시장에 미래 수익 창출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가려내기(선별)는 정보가 없는 쪽에서 상대방이 정보를 밝히도록 하는 것이다. 중고차를 사는 쪽에서 차량 상태 점검이나 보증을 요구하고, 보험회사가 계약자의 건강 검진을 요구하거나 은행들이 대출자의 신용상태에 관한 정보를 요구하는 게 그 예다. 이런 요구를 거부하면 레몬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보험회사가 자기부담금(deductible)과 보험료에 차등을 두는 것도 레몬을 골라내기 위한 전략이다. 사고 피해금액을 전액 보상하되 높은 보험료를 물게 하는 상품과 상당한 자기부담금을 물리되 보험료를 낮게 책정한 상품을 내놓고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위험한 운전자는 전자를, 사고율이 낮은 운전자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연인 사이에도 신호가 필요하다

 

[그림 설명] 롯데 이대호 선수가 프로야구 롯데-기아전 5회말에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한 후 생일축하 선물로 목걸이를 받고 있다. 2009. 6. 21

 

여름 휴가 때 배낭여행을 간 카푸친 씨는 관광객들이 들끓는 명승지 레스토랑 음식은 늘 맛이 없다고 느낀다. 잠시 스쳐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어느 레스토랑이 맛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정보비대칭 때문에 관광객이 몰리는 명승지에는 레몬처럼 겉만 번드르르한 레스토랑들이 판치는 경우가 많다.


카푸친 씨가 여행 길에 여자친구에게 줄 비싼 선물을 사는 것도 신호 효과를 위한 것이다. 여자친구는 카푸친 씨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없다. 둘 사이에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는 것이다. 카푸친 씨가 아까운 시간과 많은 돈을 들여 그녀에게 선물을 산 것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녀를 많이 사랑할수록 어떤 선물이 그녀의 선호(preference)에 맞는지 오랫동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연인 사이에도 값 비싼 선물로 신호를 보내야 할 때가 있다. 받는 쪽에서는 선물보다 현금을 더 좋아하는데 단지 속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인 낭비일 수도 있다.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정보비대칭이 없는) 아버지와 딸 사이라면 그토록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선물을 사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말은 믿지 않는다. 여자친구를 사랑한다는 카푸친 씨의 맹세도, 내 차는 레몬이 아니므로 높은 값을 쳐주어야 한다는 중고차 주인의 주장도, 나는 너무나 건강하므로 보험료를 깎아주어야 한다는 재규어 씨의 요구도, 우리 식당이 최고의 맛집이라는 관광지 레스토랑의 자랑도 검증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카푸친 씨가 한 길 사람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한 (그리고 자기 가슴 속을 다 열어 보일 수 없는 한) 정보비대칭에 따른 문제들을 피할 수 없다. 그럴수록 가장 효과적인 신호와 선별을 통해 레몬 문제를 피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글 장경덕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1988년 매일경제 기자로 정글경제 탐사를 시작했다.
금융과 투자의 개념과 원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글을 쓰려 한다.
이미지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연합뉴스

 

 

* 출처 : 네이버 캐스트, 교양 경제학 2010.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