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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서 벗어나는 법

BUZZWeb 2009. 1. 11. 20:21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법

     

    옛날에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이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그 도가 심해져서 결혼 후에는 스스로 숟가락을 뜨는 법조차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인이 부친상을 당해 보름가량을 먼 친정집에 다녀와야 할 일이 닥쳤다. 남편을 혼자 두고 떠나야 할 부인으로서는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결국 생각 끝에 작은 주먹밥을 만들어 남편의 몸 구석구석에 붙여 놓았다. 배가 고프면 먹기 좋게 떼어 먹으라는 배려였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는데 게으름뱅이 남편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에! 입 주변에 있는 밥풀대기만 혀로 떼어 먹고 다른 곳의 주먹밥은 그대로 남겨둔 채 죽어 있었다고 한다.


    맹목적 부지런함 vs 소신형 게으름

    오늘은 좀 우스개 소리로 칼럼을 시작해 보았다. 정말 이정도로 게으른 사람이 있었을 리는 없겠지만 게으름에 대한 경고와 고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속 되어 왔다. 인간의 7가지 죄악 가운데에 ‘나태’가 포함도 되었었고 지금도 게으름은 죄악시 되고 있다. ‘아침형 인간’과 같은 맹목적 부지런함이 부추겨지는 가운데 이런 추세에 대해 반기를 들며 ‘느림의 미학’을 설파하는 ‘소신형 게으름’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부지런한 사람에 다름 아니며 병적인 게으름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게으름의 세 가지 유형

    심한 게으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왜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까?

    첫째, 완벽주의형(우유부단형) 게으름증을꼽을 수 있다. 대개 이들은 자신들의 성향 때문에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우거나 세부적인 준비에만 급급하다가 시간을 다 허비한다. 겉으로는 늘 바빠 보이지만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한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당장 시험공부 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꼼꼼하게 책상정리하고 다양한 색연필로 멋있는 시간계획표 짜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이다.

    둘째, 자기회의형 게으름증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늘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스스로를 비난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미루는데 능하다. “자기회의-불안-미룸-불완전합리화(다음에는 좀 더 준비해서 꼭 해야지!)-자기비난” 이라는 악순환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셋째, 수동공격형 게으름증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대상(예: 부모)에 대한 반감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거나 승화시키지 못하고 늘 수동적으로 표현한다. 겉으로는 공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요구되어지는 일에 대해 늘 꾸물거리고 비능률적으로 행동하는 식으로 무의식적인 공격성을 표현한다. 불행하게도 자신의 인생을 서서히 실패로 몰아감으로써 상대를 화나게 하고 상대의 삶도 파괴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위의 유형에 비하면 오히려 태연해 보인다.


    게으름은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게으르다는 것이 움직이는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런 물음과 생각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바쁘게 사는 것도 삶에 대한 근본적인 게으름이다. 무릇 게으름이란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일부터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으름을 여유라는 말로 위장하지 말아야 한다. 의외로 구분은 쉽다. 게으름은 후회를 주지만 여유는 풍요로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게으름을 벗어나기 위한 7가지 법칙


    짧은 칼럼에서 자세한 내용을 다루기는 어렵지만 게으름을 벗어나는 큰 원칙을 소개한다.


    1. 내 삶의 쓰임을 알아야 한다. 게으름에 대한 가장 확실한 처방은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왜 해야 하는가!’를 발견하는데 있다. ‘내 안의 나’를 만나야 하고 ‘내가 원하는 나’를 알아야 목표가 생기는 법이고 그에 따라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절실히 알 수 있게 된다.
    2. 자기 통제력이 약하다면 자기외적 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되게 강제성을 동원하라는 것이다. 학원이나 클럽을 등록하거나 내기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언을 하는 방식 등이다.

    3. 자극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좋은 경쟁상대를 만들어라. 긍정적인 동기를 부추겨줄 수 있는 좋은 친구와 라이벌을 가까이 하고 있을수록 좋다.

    4. 해낼 수 있고 짧은 기간의 계획부터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루었다면 충분히 보상하라.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예를 들면 3일 동안의 계획을 세우고 작심삼일 하라. 그리고 자축하고 나서 또 새로운 3일의 계획을 세워라.

    5. 육체적으로 피로한 사람은 늘 정신적 피로감과 무기력감을 달고 다닌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맞는 이야기이다. 운동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천연의 보약이다.

    6. 일의 경중과 완급을 구분하라. 중요한 것부터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모든 일에 부지런한 사람은 없다. 부지런한 부분이 있고 게으른 부분이 있다. 명심하라! 모든 일에 부지런하려고 하는 순간 당신은 게을러지고 만다.

    7.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주고 구체적인 질문이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난 왜 운동을 못할까?’라는 질문 대신에 ‘체중을 5KG 정도 빼려면 하루에 얼마를 운동해야 하고 몇 칼로리 정도로 식사량을 조절해야 하지?’와 같이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실천적인 답이 나온다.


    노력은 이자를 낳지만 게으름은 연체료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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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으름

 

 

김남준 | 생명의말씀사 | 2003-11

 

소개된 책은 기독교서적입니다. 다소 종교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도움이 될 듯 하여 함께 실었습니다.


정해진 삶 속에서 보다 많은 일을 하며 사는 법- 가치 있는 일에 집중, 유능해지는 것, 부지런히 사는 것

 

1부. 게으름에 익숙한 그대에게

 

1. 게으름의 정체/싫증

돌쩌귀는 문에 붙어있는 것인데 문짝은 그 돌쩌귀를 따라 정해진 길만 움직인다. 즉, 게으른 자는 무슨 일을 하면 침대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은 발전이 없다. 물론 게으른 사람도 꿈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다.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실천을 해야 하지만 게으른 자는 분명한 목표없이 되는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즉, 목표 없음 = 게으름


2. 게으름의 뿌리/자기사랑

게으른 자일수록 그의 혀는 분주하다 - 위의 말씀을 보면 그럴듯한 이야기 같다. 그러나 잠언이 기록될 당시에는 현대처럼 실내에서 하는 일이 아닌 밖에서 일을 하는 농경사회였다. 따라서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계속 놀면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변명으로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단 이야기다. 일을 하면 우리는 쉼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친 쉼은 위의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경우다. 실례로 몸에 위험신호가 오면 하루쯤 푹 쉬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지만 ‘피곤할지 모르니까 새벽기도를 나가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게으른 자다. 게으름의 궁극적인 원인은 자기사랑이다. 아무리 게을러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는 분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하는 자기사랑의 정체는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보다 자기자신을 더 위하는 것이다. 즉, 거룩한 삶의 목표를 성취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얻는 보람보다 지금 당장 편하게 살고자 하는 자신의 육적인 요구를 붙드는 것이다. 또한 지혜로울 때(유능했을 때)부지런함은 빛난다. 실례로 문서작업을 했을 때 단축키를 알고 하면 그만큼 일을 하는 시간이 단축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3. 게으름의 발전/정욕

그리스도인에게 게으름이 틈타면 하루하루에 영혼의 재충전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을 소홀히 하게 된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영혼을 돌아보며 사는 일이 싫어서 그렇게 안 사는게 아니라 너무 바쁘고 힘이 들어 그렇게 못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께 더 이상 나아갈 의사가 없다는 불순종의 표현이고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의 선택이기 때문에 잘못된 생각이다. 따라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나님과의 시간을 내어 영적 부요함을 누려야 한다. 게으름의 발전 3단계는 1단계 - 최선을 다하지 않음(자신이 편하고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2단계 - 의무를 저버림(더 편하고자 자신의 의무를 내려놓는다), 3단계 - 정욕(쾌락, 게으름으로 덩을 수 있는 편안한 보다 자극적인 즐거움을 요구하기 시작하는 단계)


4. 게으름의 선택/부주의

본문을 보면 밭과 포도워의 모습이 나오는데 밭과 포도원을 가꾸지 않아 폐허와 같은 곳이 되었다. 그 당시 곡물은 양식이었고 포도주는 물과 같은 것이기에 밭과 포도원은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게으르고 지혜없는 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있다. 본문의 게으로고 지혜없는 자는 일부러 밭과 포도원을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부주의함과 게으름으로 원치 않았던 결과가 초래되었다. 부주의함을 피하려면 인간의 모든 기관이 활발히 활동해야 한다. 게으른 사람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부주의한 삶으로 나아간다. 즉 부주의함 = 게으름


5. 게으름의 결과/고통

본문을 보면 두가지의 길이 나오는데 원문에 보면 게으른 자의 ‘길’은 ‘정식으로 난 큰 길’을 의미하고 정직한 자의 ‘길’은 ‘통행로’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즉, 게으른 자는 처음의 길은 크지만 길을 걸어갈수록 가시울타리 길 같은 길이 되었고 정직한 자의 길은 처음엔 좁은 도로였으나 나중에는 큰 고속도로 같아진다는 말이다. 게으른 자는 눈에 보기 좋고 쉬운 길을 택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온갖 위험에 노출되고 망가진다. 그러나 정직한 자는 게으름을 버리고 정도를 따라 사는 길, 즉,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길을 택한다. 많은 난관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길을 걸어갈 때 그 결과는 훤히 뚫린 고속도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게으름을 버려아 한다.

 

 


2부. 익숙한 게으름과의 작별

 

6. 게으름과 잠(Ⅰ)

게으름과 잠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책에서 가작 적당한 잠은 하루의 피로를 풀고 다시 재생산 할 수 있을 대까지의 잠이다. 사람마다, 환경마다 적당한 잠의 양은 다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서 적당한 잠을 자야한다.


7. 게으름과 잠(Ⅱ)

잠을 줄이려면 잠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명확히 서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잠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생활을 보면 아무리 피곤해도 시간에 맞추어 회사에 출근한다. 이렇듯 잠을 줄이려면 잠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


8. 게으름과 선한 일을 향한 반응

식사를 합니다. 수저를 밥까지는 가져가지만 그것을 입까지 퍼 올리지는 못합니다. 그 이유는 입까지 수저를 올리기 귀찮아하는 게으름 때문이다. 그러면 이 사람은 영원히 양식을 섭취하지 못하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우리 생활로 옮겨 보았을 때,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끝까지 일을 끝맺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 아무리 처음에 준비를 많이 하고 부지런히 일을 한다고 해도 그 일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면 그것도 게으름이다. 따라서 우리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9. 게으름과 교만

일곱사람이 조리있고 이치에 맞는 선한 대답을 하지만 게으른 자는 일곱사람의 대답보다 자신 한사람의 생각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다. 즉, 나쁜 고집, 감화력이 없는 고집을 피운다는 것이다. 얼마전 CF에서 모든 사람이 ‘예’할 때 ‘아니오’하는 것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그것이 만약 좋은 고집, 즉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여 판단하고 나서의 고집이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10. 게으른 자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

본문에서 말하는 게으른 자는 아주 게으르게 일하는 종이다. 일을 함에 있어 전혀 분발하지 않고 그 일을 잘 감당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 종을 고용한 주인에게 극심한 고통(이에 초, 눈에 연기같은을 안겨 주었다.치명적 고통은 아니지만 불쾌감을 안겨주는 괴로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러한 모습을 보신다면 주인과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교회에서 많은 헌신을 감당하고 있지만 본문에서의 게으른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많은 사람들 뿐만아니라 하나님도 고통을 겪는다. 따라서 우리가 헌신할 때 게으름을 버리고 열정을 가지고 헌신해야 할 것이다.


11. 게으름으로부터의 교훈

포도원의 비유로 다시 돌아가자. 포도원을 보고 솔로몬처럼 교훈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냥 지나친 사람들은 두가지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해서 부주의함에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운 사람이든지 아니면 그 밭의 주인과 똑같이 게으른 사람이든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생각들은 대부분 주관적이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를 시킬 때가 많지만 우리는 늘 자신에게 엄격하도록 의지적으로 노력하고 객관적 기준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 앞에서 항상 열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