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시절, 군복이 화려했던 이유
제복은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 파란색 코트, 술이 달린 모자 등으로 군복을 구성해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는 복장으로 입힌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 보러가기
몇 해 전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대한 박물관을 거닐며 우리 인류 최고의 문화예술품들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누리던 중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그림 속에 나오는 군인들의 모습에서였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그림 속 군인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흰색바지 차림에 파란 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으며, 모자 역시 깃털 형태의 술이 달린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슬쩍 봐도 이들이 입은 옷은 전투를 하기에는 너무 불편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군복이라기보다는 파티에 입고 가기에 적합한 연미복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군복이라 하면 흔히 카키색 혹은 국방색으로 대표된다. 군복이 이렇듯 황갈색, 녹색 등을 혼합한 형태로 구성된 이유는 군인들을 전장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다. 즉, 위장색이라 하여 주변 배경 색과 유사한 색으로 군복을 입게 함으로써 군인들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루브르박물관에서 목격한 그림 속 그 시절에는 군인들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일까? 흰색 바지, 파란색 코트, 술이 달린 모자 등으로 군복을 구성해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는 복장으로 입힌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 역선택이란 무엇인가?
역선택이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유발되는 시장실패의 한 종류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비해 거래(가격, 재화, 품질 등)에 수반된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 비대칭적 정보(asymmetric information)의 상황이 발생했다고 하며, 이를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 중에는 거래당사자 중에서 한 쪽이 다른 쪽의 특성에 대하여 잘 모르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역선택이다. 역선택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정보수준이 낮은 측이 사전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상대방과 거래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 역선택의 사례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뷔페식당 역시 역선택에 해당한다. <출처: bigmick at en.wikipedia.org>
이러한 역선택의 사례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뷔페식당 역시 역선택에 해당한다. 뷔페식당은 일정 금액만 내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따라서 뷔페식당 주인은 적게 먹는 손님을 더욱 선호할 것이다. 어차피 모든 손님에게 동일한 금액을 받게 되는데 당연히 적게 먹는 손님이 방문해야 이익이 더 많이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의 의도와는 달리 실제 뷔페 음식점을 주로 이용하는 손님들은 식성이 좋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자신의 식성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일반 음식점에 갈 경우 배부르게 먹으려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하지만 뷔페 음식점을 이용할 경우 일정 금액만 내면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뷔페 음식점을 더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뷔페식당 주인이 손님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다면 식성이 좋은 손님들에게는 식당 이용료를 추가로 받을 수 있겠지만, 손님들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주인은 별 수 없이 역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역선택은 중고차 시장에서도 발생한다. 중고차 시장의 수요자(구매자)는 자동차의 품질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다. 유사한 연식과 주행거리를 기록하고 있다고 해도 차량 주인의 관리 방식이나 노력에 따라 중고차의 품질은 천차만별이다. 소비자는 무사고에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관리를 잘 받은 중고차는 고가에 구입할 것이며, 사고 이력이 있거나 관리를 소홀히 받았던 중고차는 저가에 구입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비자가 차의 겉만 보고서는 이와 같은 자동차의 ‘숨겨진 특성’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중고차를 내놓은 공급자(판매자)는 자신이 타오던 차량의 상태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다.
◆ 역선택은 중고차 시장에서도 발생한다. <출처: gettyimages>
정보가 불완전한 경우에 가격과 품질 등에 관한 예측은 확률에 근거한다. 만약 좋은 차와 나쁜 차가 시장에 50:50의 비율로 유통되고 있다면 이에 기초한 평균 가격에 근거해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구매의사 가격과 판매의사 가격을 책정한다. 이때 소비자는 개별 중고차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하므로 평균 가격에 근거해서 지불의사를 표현한다. 하지만 공급자는 자신이 팔 중고차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다. 정보의 비대칭이 나타나는 것이다. 좋은 차를 팔고자 하는 공급자는 자신의 중고차 가치가 평균 가격보다 높기 때문에 차량을 중고차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반면에 나쁜 품질의 자동차를 팔려는 사람은 자신의 차량을 평균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에 차량을 중고차 시장에 내놓는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좋은 품질의 자동차가 시장에서 사라지고, 소비자는 나쁜 품질의 차량을 선택하는 역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 군복이 화려한 이유는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앞서 언급한 화려한 군복의 탄생 원인은 화약에 있다. 중세를 지나 근세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검은 색 화약을 활용한 대포와 총 등의 무기 개발에 더욱 열을 올렸다. 이로 인해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들이 성능 좋은 대포나 총포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화약에서 발생하는 검은 연기로 인해 전쟁터에서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육안으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진 것이다. 화염으로 인해 정보의 비대칭 상황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아군에게 총구를 겨눌 수도 있는 역선택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멀리서도 아군인지 적군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화려한 군복을 입히는 것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일련의 그림들 속 군인들의 모습이 중세를 지나 근세로 이어지면서 점점 더 화려해진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중세의 경우에는 화약을 기반으로 한 무기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굳이 전장의 군인들을 화려하게 입힐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두꺼운 갑옷으로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칼이 아니라 대포와 총포를 갖고 싸우기 시작한 시절에 이르러서는 칼에 대비하기 위한 두꺼운 갑옷보다는 검은 화염 속에서 역선택으로부터 아군을 지키기 위한 화려한 군복이 필요했다.
◆ 무연화약이 전투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흔히 군복하면 떠올리는 카키색 복장 역시 이즈음에 처음 도입되었다. <출처: gettyimages>
화려한 군복이 역사 속 유물로 사라진 계기 역시 화약의 발달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화약을 다루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였다. 결국 1880년대 이르러서는 무연 화약이 전투에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이제 검은 화염이 만연한 전쟁터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려한 군복은 군인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복장으로 바뀌어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군복하면 떠올리는 카키색 복장 역시 이즈음에 처음 도입된 것이다.
# 역선택을 방지하는 방법, 신호와 선별
경제학에서는 역선택으로 인한 시장 실패를 해결하는 여러 방법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신호’와 ‘선별’이다. 먼저 신호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측이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알리는 행동을 통해 역선택을 방지하는 방법이다. 신호를 사용하여 역선택을 방지하는 방법의 예시로는 취업할 때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면접관들은 지원자들이 우수한 인재인지 그렇지 않은 인재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보를 갖고 있는 지원자가 자신이 우수한 인재라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어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게 된다. 구직자들이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고 우수한 영어성적을 보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바로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신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 정보의 비대칭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보를 갖고 있는 지원자가 자신이 우수한 인재라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어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게 된다. <출처: gettyimages>
반면, 선별은 신호와 달리 정보를 갖지 못한 측에서 역선택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숨겨진 특성을 알아내려는 방법이다. 보험회사가 가입자들에게 건강진단서를 제출할 것을 요청하는 행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보험회사는 보험 가입자가 건강한 사람인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 상황에서 보험 가입에 더욱 적극적인 측은 상대적으로 건강에 자신이 없는 고객들일 것이다. 즉, 역선택의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러한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보험회사는 고객들에게 진단서를 요구하는 등 고객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선별적 행위를 시도한다.
# 제복은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신호와 선별 행위였다.
앞서 언급한 군복 등을 우리는 흔히 제복이라 부른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제복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학교나 관청, 회사 따위에서 정하여진 규정에 따라 입도록 한 옷’이라고 나와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보통 유니폼이라 부르는 옷들이 제복이다.
지금의 제복에 대한 정의와는 달리 예전에는 신분과 계급을 서열화하고 역선택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계급이 정해진 신분사회에서는 그 사람이 어떠한 신분의 사람인지에 따라 다른 대접을 해줘야 한다. 이때, 특정인이 어떠한 신분을 갖춘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를 가장 쉽게 전달하는 방법은 신분에 따라 다른 제복을 입는 것이다. 옷차림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알릴 경우 굳이 매번 자신이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를 일일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특정인의 신분을 잘못 파악하여 유발할 수 있는 역선택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 특정인이 어떠한 신분을 갖춘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를 가장 쉽게 전달하는 방법은 신분에 따라 다른 제복을 입는 것이다. <출처: gettyimages>
고대 로마에서도 계급별로 색상과 재질을 달리하여 의복만 보고도 그 사람의 신분적 위치를 직감할 수 있게 제복을 고안해냈다. 의복에 자신의 신분적 정보를 반영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역선택을 유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은 비단 로마에서만 행해진 것은 아니다. 우리 선조들 역시 선비들의 옷차림을 구분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때로는 자신들의 신분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혹은 전쟁에서 군인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회사나 학교 등을 구분하기 위해서, 멀리에서도 가시적으로 확인되는 의복을 통해서 역선택을 방지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경제관념이 다시 한 번 놀라울 따름이다.
글 박정호/KDI 전문연구원
평소 “배워서 남 주자!”라는 신조를 갖고 있어 EBS, KBS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금융소외계층 등을 위한 강의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경제신문 등 여러 매체에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경제학자의 인문학서재]1,2권과 [공기업 취업전략](공저) 등이 있다.
* 출처 : 네이버 캐스트, 201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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