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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비안 해적과 원피스에 나오는 역사 속 해적들

BUZZWeb 2013. 5. 25. 14:49

해적 (海賊, pirate)

 

형법  제340조 (해상강도)

①다중의 위력으로 해상에서 선박을 강취하거나 선박내에 침입하여 타인의 재물을 강취한 자는 무기 또는 7년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제1항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10년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개정 1995.12.29>
③제1항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살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부녀를 강간한 때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개정 1995.12.29>
제342조 (미수범) 제329조 내지 제341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성스러운 분들

 

 

목차
1 개요 2 역사 3 해적의 구분 4 현대의 해적 4.1 형법상의 해적 5 실존한 유명 해적 6 문화 컨텐츠로서의 해적 7 기타 8 관련항목

 

 

1 개요 ¶

"흔히들 해적의 생활 하면 낭만을 떠올립니다. 끝없는 항해,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 다시 생각해 보세요! 해적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애를 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범죄자였고, 따라서 어떤 항구에도 정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훔칠 뿐이었죠! 그들은 늘 무기를 달고 살았습니다. 혹시, 한 손이 없어져도 이걸로 대체했을 정도니까요!" - 히스토리 채널, 밀리터리 Q&A

 

해적선을 타고 바다에서 지나가는 배를 공격해 화물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 쉽게 말해 강도. 산에는 산적, 들에는 들적[1]초적, 말타고 다니면 마적, 바다에는 해군해적이다. 자매품으로 하늘에는 공적도 있다.

 

 

2 역사 ¶


해적이 언제부터 나타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인류가 해상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나타난 종자들이 아닐까...하고 추측할 뿐이다. 고대 이집트 나일강 하구에서 징세관이 탄 배를 습격한 이들이 기록상 최초의 해적. 이들의 역사는 고대의 해양민족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는데 이 해양민족들은 이집트를 습격하고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를 박살냈으며(…) 여하튼 고대세계의 문명들의 흥망을 좌지우지 했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바다 민족을 참고.


역사상 처음으로 해적 소탕이라고 할 만한 일이 벌어진 것은 로마 공화정 시대로 해적들이 증가하여 지중해의 평화가 위협받자 로마 공화정은 당대의 명장 폼페이우스에게 파격적인 대권을 주고 해적을 소탕하게 했다. 폼페이우스는 적극적인 초토화 작전으로 법률상 정해진 기한을 단 몇달 쓰지도 않고서 해적을 몽땅 소탕해버렸다. 그리고 이후 동방을 정복해 나갔으니 결국 해적들이 로마 제국의 확장에 기여한 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는 딱히 해적들이 번창하지는 않았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중세에는 유명한 바이킹들이 서유럽을, 이슬람 해적들이 남유럽을 휘젓고 다녔다. 특히 이슬람 해적들은 기독교인들을 습격하여 돈도 뺐고 성전도 치르고 겸사겸사 노예로도 부려먹고 몸값도 받아내는 등 그 피해가 극심했다. 비잔티움 제국은 상대적으로 강한 해군력으로 해적들을 억누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13세기, 비잔티움 제국의 세력이 약해지고 비잔티움 해군이 전멸하자 오히려 해적들이 비잔티움 제국에 중용되어 해군 전력으로 사용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13세기에 이르자 레반트에서 쫓겨난 구호기사단은 중앙집권체제여서 수도가 털린 후 정신을 못차리는 비잔티움의 영토인 로도스 섬을 점령하여 로도스 기사단으로 개명하고는 이슬람 해적들이 하던 짓을 똑같이 하였다. 이슬람 해적은 섬멸하고 거기 잡힌 기독교도 노예 노꾼들은 해방해주는 식. 당연히 12세기 이후 동지중해를 석권한 베네치아와 연관이 깊을 수 밖에 없었으나 베네치아는 어디까지나 장사꾼 근성(원래 이집트로 가게 되어있던 4차 십자군을 콘스탄티노플로 돌려버린 것도 이집트와의 통상조약에 불침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이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대의를 중시하는 구호기사단과는 마찰이 잦았다.


15세기에 이르러 지중해 무역이 번창하면서 북아프리카 해안에 거점을 둔 바르바리 해적들 역시 더욱 번창했다. 이들은 지브롤터 해협부터 팔레스타인 근해, 심지어 유럽의 북쪽 변방인 아이슬란드까지 휩쓸고 다니며 선박들과 해안 마을들을 습격해 인신매매와 약탈을 일삼았다. 해군의 전통이 없는 오스만 제국은 이들을 적절히 지원하며 국력을 늘려나갔고, 아예 해군의 주요인사로 잘 써먹기도 했다.


지리상의 발견과 스페인의 아즈텍, 잉카 정복 이후 해적들의 눈길은 소위 스페인 대해라 불리는 곳으로 쏠리게 되었다. 스페인 대해란 스페인이 정복한 카리브해의 섬들과 멕시코만까지를 일컫는 말로, 각종 귀금속을 싣고 본토로 향하는 스페인의 선박들은 해적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특히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이러한 스페인의 선박들을 습격해서 쏠쏠한 수입을 얻었는데 그 뒤에는 엘리자베스 1세의 묵인이 있었고 결국 이는 무적함대의 영국침공을 부르는 한 요소로 작용하기까지 했다.


17세기 말, 대양 무역이 활성화되고 해양 노동자로 전락한 하층민들 중 일부가 상선에서의 열악한 처우에 반발하여 선상 반란을 일으키거나 해적으로 변하면서 해적들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1690년부터 1740년대까지를 '해적의 황금시대'라 부르는데 이시기 유명한 해적들이 많이 나타났고 대중들에게 해적에 대한 로망을 심어준 시기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해적들에게 습격당해서 목숨을 잃고 화물을 빼앗긴 사람들에겐 황금시대란 말이 가당치가 않겠지만, 반대로 빈부격차와 불합리한 당시 사회상에 불만을 느낀 하층민들에게는 나름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한 소재였으리라...

 

그리고 이 시기 해적이 번창하게 된 이유에는 영국과 프랑스 등이 아직 아메리카 대륙의 이권을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었던 스페인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사략선 허가를 남발했다가 벌어진 측면도 컸다. 이후 이들 나라가 스페인과 휴전하여 일자리를 잃은 사략선들이 그대로 해적이 되어 버린다.[2]


이 시대의 유명한 해적으로 블랙비어드(검은 수염)라 불린 에드워드 티치, 막대한 보물을 가졌을 거라고 관심의 대상이 된 캡틴 키드 등이 있다 이 시기의 해적이 크기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사략선 활동에 따른 해적 소탕의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했던 점과 식민지 관련 문제로 각국이 해적토벌에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의 제해권을 장악한 영국해군의 소탕으로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데이비드 코딩리는 이에 대해서, "어디까지나 해적이라는 것은 국가가 인정할 때 활동이 가능하며, 아무리 강해져도 국가가 그들을 필요로 없어한다면 반드시 소탕된다." 라고 지적했다. 또한 사실 유명한 해적의 대부분이 합법적인 사략선 운영을 했었다. 공무원?


그러나 해적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오늘날에는 해운이 번창한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 일대에서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곤 하며, 악명 높은 소말리아 근해 역시 해적들이 날뛰는 지역이다.


한국 역사에도 해적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후삼국시대에 존재했던 신라구의 약탈과 왜구의 약탈이 있다.


신라구는 후삼국시대 때 신라 유민으로 구성된 해적 집단으로 일본의 큐슈와 쓰시마 섬등을 약탈하였으나 후삼국시대 이후에는 고려에 편입되었고 왜구는 고려말까지 왜구들의 침략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였고 이는 조선 초까지 이어졌다. 이에 고려와 조선은 해군력을 키우고 무기개발에 힘써 왜구의 침략을 막아냈다. 덕분에 조선의 해군력은 연안전력으로만 봤을 때는 당대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주력선인 판옥선이 흘수선이 낮은 평저선이라 원해로 나갈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뿐만 아니라 명-청 교체기 때 가도에 주둔한 모문룡군과 명나라 유민들이 사실상 해적 행위를 하여 조선의 골치를 만들게 했다.外#


이렇게 보면 해적의 역사가 길고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해적은 떼강도이며, 매우 흉악하고 잔인한 무리라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덕분에 해적이 날뛰는 지역은 해안가에 사람도 없고 마을도 없는 황무지가 되기 일쑤며,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도 해안가에서 털어먹을 것이 없는 해적들이 상륙해서 몸소 찾아갈 정도였으니 사실상 피해를 안 입은 지역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을 단편적인 역사책만 보고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3 해적의 구분 ¶


서구권 해적은 버캐니어, 파이러츠, 커세어 등으로 불리는데, 각기 다른점이 있다.

 

'버캐니어'는 프랑스계열 개척민들이 주축이 된 해적으로 북미 식민지에 근거지를 갖고 있었고, 원래는 강에서 활동하던 수적이었으나 활동 범위가 바다로 확대된 것.


'파이러츠'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사략선들이 사략선 활동이 중지되자 해적화 된 것으로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일부는 아프리카 서해안까지 활동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커세어'는 지중해에서 활동한 알제리, 모로코, 리비아 등지의 이슬람계 해적으로 이슬람 왕조들의 지원을 받았으며, 전시에는 오스만 제국 등의 이슬람 왕조 해군의 주축이 되었다. 이슬람 해적만이 아니라 똑같이 이슬람 선박을 습격하는 성 요한 기사단(몰타 기사단)과 같은 기독교도 해적도 커세어라고 불렀다. 미 해군 전투기 F-4U(2차대전), A-7(현대) 및 프로토스 제공함선 커세어의 유래.


버캐니어와 파이러츠는 배위에서 당대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평등사회를 이뤘고 인종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약탈행위 후 공정한 분배를 하고 선장을 투표로 임명/교체하는 등 민주적인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커세어는 선장 자신이 이슬람의 토호였고, 부하들을 거의 노예다루듯이 다뤘다고 하며, 수입의 일정부분을 자신을 후원하는 이슬람 왕조에게 바치는 일종의 사략선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동양의 해적은 대부분 왜구였다. 왜구의 악명이 워낙 높아서 중국인 해적 등이 스스로 왜구로 위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부 왜구가 아닌 해적 중에도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친 경우가 있는데, 일단 신라 말에 국가 혼란 속에서 등장한 신라구가 있었고, 또한 고려시대에는 여진족이 해적질을 많이 해 울릉도 등지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 왜구 이외의 해적이라 하면 단연 베트남/중국 계열 해적. 베트남~중국 광동성 국경의 치안 공백지역에 거주하며 열심히 양국의 민간인과 상인들을 약탈했던 부류로 특히 베트남 남북조를 통일한 떠이선 당은 이 해적들을 이용하여 청나라을 견제하기도 했다. 그러다 청나라에서 해적들에게 해적행위를 관두는 조건으로 신변과 재산 보장 및 관직을 수여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근데 얘들이 동료를 모으는 방식은 다름아닌 미트스핀 外이었다고(...)

 


4 현대의 해적 ¶


유해[3]


무기체계의 발달로 현재는 해적들이 거의 없을 것 같으나 이는 오산. 말라카 해협과 같이 해운업이 활발할 지역은 해적들이 지금도 들끓고 있다. 그 중에서도 헬게이트 소말리아의 해적들은 세계각국이 토벌하러 나설 정도로 극성이다. 특히 해운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배 한척을 납치하면 상당량의 몸값을 청구할 수 있고 해적선이 예전보다 포착하기 어려워지는데다 인권의 발달로 함부로 몰살시키지도 못하는 등(특히 이들의 거점인 소말리아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서 처벌도 어렵다.) 여러 상황 때문에 근절하기 어렵다. 요즘엔 해적 보험까지 성황이고 더불어 이 보험금 타먹으려는 해적들이 들끓면서(다시 말해서 돈이 되면서) 어려운 상황이다. 소말리아 참고.

 


4.1 형법상의 해적 ¶


형법상에서는 형법 제340조(해상강도)에서 해적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해상강도 참고. 다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해적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보통 해적은 남의 배를 공격하는 범죄를 일컫는 반면, 우리나라 형법의 해상강도죄는 남의 배는 물론 자신이 타고 있는 선박을 탈취한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페스카마15호 선상살인사건(97도1142))


또한 해적은 인류의 공적이므로, 어느 나라 군함이든 이를 나포하여 처벌할 수 있다. 이는 유엔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105조에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on the high seas, or in any other place outside the jurisdiction of any State, every State may seize a pirate ship or aircraft, or a ship or aircraft taken by piracy and under the control of pirates, and arrest the persons and seize the property on board. The courts of the State which carried out the seizure may decide upon the penalties to be imposed, and may also determine the action to be taken with regard to the ships, aircraft or property, subject to the rights of third parties acting in good faith."


"모든 국가는 공해 또는 국가 관할권 밖의 어떠한 곳에서라도 해적선, 해적 항공기, 또는 해적 행위에 의해 탈취되어 해적의 지배 하에 있는 선박, 항공기를 나포하고 그 선박과 항공기 내에 있는 사람을 체포하고 재산을 압수할 수 있다. 또한 나포를 행한 국가의 법원은 해당 해적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결정할 수 있으며, 선의의 목적에서 행동한 제3자의 권리를 존중할 것을 조건으로 그 선박, 항공기 또는 재산에 대하여 취할 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5 실존한 유명 해적 ¶


- 해적/실존인물 항목 참고.

 

 

6 문화 컨텐츠로서의 해적 ¶


- 해적/창작물 항목 참고

 

단 창작물에서와는 달리 실제 해적들의 생활은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이들은 잡히면 처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잡히지 않더라도 해적끼리의 싸움으로 죽는 경우가 많아 평균 수명은 50대를 넘기지 못했다. 게다가 이들은 엄청난 보물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무역선의 화물, 심지어는 고기잡이 배를 털기까지 했었다. 거기에다가 캡틴 키드의 경우 살기 위해 항복했다가 교수형당하기도 했다. 현시창의 대표적인 예랄까...

 

아무튼 그나마 풍요롭고 명예로운 삶을 살다 간 해적의 예는 프랜시스 드레이크 정도가 유일하고, 그나마 이 양반도 열병으로 5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깔끔하게 은퇴해서 죽은 유명한 해적의 예는 '존 보웬'이 유일하다(그나마 이 사람도 풍토병으로 사망). 아랍권 해적으로는 하이르 앗 딘이 최고의 성공 예. 죽을 때 문상객으로 집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밖에도 동아시아에서 정일수가 깔끔하게 항복해서 오래오래 잘 살았다.


특히나 바다 한가운데서 식량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땐 가죽신발을 삶아먹거나 하며 처절하게 보냈으며, 심할 경우엔 인육을 먹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18~19세기 해양법상, 보름이상 식량없이 표류하는 경우, 인육을 먹어도 살인으로 처벌받지 않았지만, 얄짤없이 사형당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해적일 정도로 이런 면에서도 처벌대상이었다.


해적은 배당금이 모이면 배를 떠날 수 있게 되는데 계급에 따라 받는 배당금이 다르다. 규칙 또한 엄격하여 취침 시간은 정확히 지켜야 되며(밤늦게 술 마시고 싶으면 혼자 갑판에서 불도 없이 마셔야 된다.) 다른 것보다 여자는 배에 절대 있을 수 없으며, 배에서 발견 즉시 사형이었다. 여자가 해적이 된 예는 있지만 남장여자가 아니고서야 불가능.


그럼에도 "캘리코" 잭 래컴(Calico Jack Rackham)으로 알려진 존 래컴이라는 해적은 메리 리드(Mary Read)와 앤 보니(Anne Bonny)라는 두 명의 여해적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물론 잡혀서 교수형. 두 여자 해적은 임신중이라 감형됐으나 그 뒤 기록이 없음). 그런데 체포될 때 두 여해적은 끝까지 싸웠지만 래컴은 선창 구석에 짱박혀서 벌벌 떨었다고 한다. 물론 부하들의 반응은 "아놔 저런 ㅄ이 대장이었나염?", 메리와 앤도 사형장에서 "남자답게 싸웠더라면 교수형은 피했을 거야!"라고 외쳤다카더라.

 


7 기타 ¶


양식장에 침입하여 양식 어패류에 피해를 입히는 생물을 해적 생물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해적 생물로 불가사리가 있다.


모 작가에 의하면 해적은 정의의 사도다. OME


중국 어선들이 한국 영해에서 불법 조업을 할 뿐만 아니라 한국 어선이 설치한 어구를 훔쳐가고 잡힌 고기를 털어가는 등의 행위를 하며, 한국 해경의 단속에 대해 흉기를 들고 대항하기 때문에 이들을 해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MLB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NFL 탬파베이 버커니어스가 해적을 모티브로 한 스포츠팀이다.

 


8 관련항목 ¶

 

  • 도적
  • 우주해적
  • 졸리 로저
  • 해적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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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서 한번 언급되었다. "산에 살면 산적, 바다에 살면 해적, 들에 살면 들적."
    [2] 정확히는 카를로스3세의 개혁으로 스페인 신대륙 영토의 수입을 본국으로 운반하는 업무를 타국의 상선대에게도 개방한 것이 사략선들에게 치명적이었다. 그 이전에 영불의 상업계가 스페인 신대륙 영토의 수익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략행위에 가담하는 것-그도 그럴게 스페인 정부는 식민지에 기항하는 선박들을 철저히 스페인 국적선만으로 한정했었다-이었는데, 개혁으로 인해 안전하게 스페인 식민지의 부에 접근하는 길이 열리게 되자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인 사략행위에 투자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3]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유저해적'의 약칭이다

     

     

    * 출처 : 엔하위키 미러, 2013-05-09 21: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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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리비안의 해적과 원피스에 나오는 역사속 해적들

     

    해적의 역사는 깊고도 길다.

     

    역사 속에 최초로 해적이 언급되는 기록은 BC 2000년 경의 이집트이다. 그러나 이는 기록상의 첫 등장일 뿐이지, 실제로 해적의 역사는 선박의 발명과 동시에 시작됐을 것이다.

     

    사르데냐 해적, 바이킹, 영국 해적, 왜구등 역사에 명함을 내미는 해적은 많지만, 이번엔 캐리비안의 해적과 원피스 등의 모델이 되는, 특히 18세기 해적에게 있어 '황금기'라고 불리는 시대의 해적들을 집중 조명해볼까 한다.

     

    대해적 '검은 수염' (Black Beard: 블랙 비어드)-잭 스패로우

     

     

     

    잭 스패로우의 모델. 잭 스패로우의 두건 위로 모자를 빗겨 쓴 모습이나 어깨 위의 멜빵 패션은 모두 이 검은 수염에서 따온 것이다.

     

    본명은 에드워드 티치. 영국 출신으로 캐리비안 일대에서 활약하는 해적이었다. 그는 본래 영국 소속으로 국가의 허락을 받고 타국의 상선을 습격하는 국립(?) 해적이었다. 그러나 1714년 평화 협정이 맺어짐으로서 그는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사우스 캐롤라이나 일대를 공포에 떨게 하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행적은, 무려 1주일간 한 도시를 봉쇄하고 통행세를 받은 '찰스턴 봉쇄 사건.'

     

    그는 포문의 수가 40문이나 되는 '앤 여왕의 복수'라는 배를 이끌었는데, 오크러코크로 향하는 도중 그 앤 여왕의 복수를 잃어버린 것이 그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1718년 메이머드 대위에게 쫓긴 그는, 백병전 도중 적의 집중 공격을 받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의 악명이 오죽 높았으면, 한동안 영국 해군은 전리품으로 그의 머리를 돛대에 걸고 다녔다고 한다.

     

    <원피스에도 등장하는 '검은 수염 해적단'.>

     

     

    바르바로사 형제 (붉은 수염 형제)-바르보사

     

     

    발바리아 해에서 활약했던 유명한 아랍 해적으로 첫째의 이름은 우르지, 동생의 이름은 히지르였다.

     

    1516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알제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자, 알제로 쳐들어가 술탄을 죽이고 스스로 술탄이 되었는데,(대단한 놈들!) 이것이 곧 '알제 해적'(또는 발바리아 해적)의 시초다. 이후 형인 우르지가 죽자 동생인 히지르가 술탄 지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동생 히지르는 알제를 거점으로 삼으려는 스페인을 집요하게 공격하며 약탈하였고, 때문에 아랍인들은 그를 신의 선물이라는 뜻의 '하이레딘'(대항해시대에도 등장하는 하이레딘이 바로 이 사람)이라 불렀다. 훗날 하이레딘은 오스만 투르크 황제의 직접 인가도 받아 정식 술탄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바르보사의 이름은 바로 이 바르바로사 형제에게서 따온 것이다.

     

     

    헨리 모건(Henry Morgan)-도끼손 모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중 '모건과 바르톨로뮤가 만든 해적 법전의 조약에 따라...'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두 사람은 과연 실존인물일까? 그렇다.

     

    해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사실 군에 소속된 공인된(?) 해적이었으고, 쟈메이카의 통치자이기도 했으며, 땅 투기에도 능해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그는 해적의 황금기인 18세기보다 조금 이전인 1655년부터 1673년까지 활약한 해적이었다.

     

    그는 자메이카 일대의 해적들을 이끄는 해적 함대의 두령이었으며, 스페인군과 싸워 많은 영토를 빼앗았다. 특히 신부와 수녀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포토 벨로' 전투에서 그의 악명은 널리 알려져 'The terrible'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훗날 영국 본국에서 그에게 해적들을 해산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는 얌전히 명령에 순응했고, 영국의 찰스 2세는 그에게 '경'의 칭호를 하사했다. 아마 그는 이름이 알려진 해적 중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마친 몇 안되는 해적일 것이다.

     

     

    바르톨로뮤 로버츠(Bartholomeu Boberts)-바솔로뮤쿠마

     

     

    아프리카, 인도양, 캐러비안 해를 오가며 수백 척의 선박을 나포한 황금시대의 간판급 해적.

     

    그의 가장 유명한 일화는 70대의 무장 함선의 보호를 받고 있던 포르투갈 상선을 약탈하고 도망간 것.

     

    특히 그는 훤칠한 키와 외모, 그리고 간지나는 코디 센스로 유명했는데, 붉은 깃이 달린 모자, 다이아몬드 십자가가 달려있는 황금 체인 목걸이, 화려한 비단 옷에 허리에 차고 있는 두자루의 총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후 그는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해적 선장의 모델이 된다.

     

    그는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로,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주일마다 선원들을 이끌고 예배를 드렸으며, '하느님께서 해적질을 윤허하셨다.'라고 하며 해적질의 일과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하는 바르톨로뮤가 직접 제정한 해적 규약이다.

     

    1. 모든 승무원은 현안에 대해 동등한 표결권을 가진다. 어느 때든 노획한 식료품과 주류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공동선을 위해 절약하기로 결정한 경우를 빼고는 그것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2. 모든 승무원은 전리품을 공평하게 요구할 수 있다. 자신의 적당한 몫 이외에도 옷가지를 1벌 더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동료의 것을 훔치면 코와 귀를 자르고, 무인도에 버려질 것이다.

     

    3. 주사위놀이든 카드놀이든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4. 촛불은 밤 8시에 끈다. 이후에 술을 마시고 싶다면 불을 켜지 않고 갑판에 앉아 마셔야 한다.

     

    5. 모든 선원은 전투에 즉각 사용할 수 있도록 늘 각자의 무기를 정비해야 한다.

     

    6. 소년이나 여자를 배에 데려와서는 안 된다.

     

    7. 전투 진행 중에 탈주하는 자는 처형하거나 무인도에 버려질 것이다.

     

    8. 배 안에서 서로 때려서는 안 된다. 언쟁이 있을 경우 육지에 내려서, 등을 지고 서있다가 조타수의 명령에 따라 즉시 돌아서서 총을 발사한다. 첫번째 발사에서 모두 빗맞추게 되면 칼로 싸우며, 그럴 경우 먼저 피를 낸 자를 승자로 선언한다.

     

    9. 저축금을 각자 1000파운드 채울 때까지 해적을 계속해야 하고, 그 전에 그만둘 수는 없다. 근무 중 불구가 된 사람은 공동기금에서 은화 800닢을 받고, 부상자들은 부상 정도에 따라 배분받는다.

     

    10. 선장과 조타수는 전리품 배당 몫의 2배, 포수장과 갑판장은 1.5배, 다른 간부선원들은 1.25배, 일반 신사들은 1배를 받는다.

     

    11. 악사들은 안식일에만 쉴 수 있다.

     

    아마 이것이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해적 법전'의 모델일 것이다.

     

     

    장보자(張保仔)-샤오펭

     

     

    중국 아편전쟁 시절 활약하던 해적.

     

    홍콩 영화 '대해도'에서 그는 잘생긴 꽃미남 해적으로, 자신의 뒤를 쫓는 수사장군 강대위조차 매료시켜 자신을 놓아주게 만드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주로 영국에 대항해 해적질을 벌이던 해적인데, 전성기 때는 수천 명의 부하와 1천척이 넘는 선단을 운용했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주윤발의 캐리비안의 해적3 출연이 확정될 당시 그에게 맡겨진 잠정적 역할을 '장보자'였다는데... 여러모로 국민 감정을 고려해 '샤오펭'으로 이름을 바꾼 것 같다.

     

    아직도 홍콩 근해에는 그의 이름을 딴 섬 '장보자동'이 존재한다.

     

     

    그 외...

     

     

    프랜시스 롤로노아-롤로노아 조로

    캐러비안에서 활약하던 해적. 스페인 선단을 주로 공격했으며, 매우 잔혹하고 터프했다고 전해진다.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다.

     

     

    알비다

    실존했다고 전해지는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고대의 해적단 이름.

     

     

    새무얼 베라미-베라미

    북미에서 활약하던 해적. 그다지 이름 있는 해적은 아니었으나, 얼마 전에 그의 배가 인양되어 유명해졌다.

     

     

    장 라피트-라피트

    기록상 등장하는 최후의 해적. 프랑스 출신이며 2차 영. 미 전쟁에서 미국에 협력하였다.

     

     

    이렇듯 역사상 수많은 실존 해적이 있었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고 그리고 사라져갔다.

    물론 이들은 악당이다. 약탈, 살인, 방화, 강간, 노예상 등 수많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질렀으며 국가의 정당한 심판을 받았다.

     

    실제로 이들 해적의 영업(?)기간은 일인당 평균 3~4년으로 매우 짧았으며, 그들이 자랑하는 대해적시대 역시 40년을 겨우 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에겐 누구나 반항아 기질이 있는 법. 나라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거친 바다 사내의 모습은 그 누가 보아도 로맨틱하다. 게다가 그들이 남긴 수많은 전설, 모험담, 숨겨진 보물 이야기 등은 그들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음을 이용해 더욱 뻥튀기되고 부풀려져 그들에 강한 향수와 환상을 남겨놓았다.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원피스 등에서 해적들이 선역으로 나오고 그들을 소탕하려는 해군이 오히려 악역으로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런 연유일 것이다.

     

    뭐 해적을 희대의 악인으로 묘사하든, 로맨틱한 모험가로 묘사하든, 죽은 자는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 법. 더 이상 해적이 위협이 되지 않는 시대이니만큼, 그들의 행적을 미화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가 아닐까?

     

    아래는 17세기 말, 영국이 해적들에게 합법적인(?) 노략질을 허용해 해적의 도시라고 불렸던 포트 로얄

     

     

     

     

    *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창세인(x_hunter), 2007-06-20,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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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리비안의 해적 4 - 역사적 관점으로 분석하기

     

    [캐리비안의 해적 4 - 낯선 조류, Pirates Of The Caribbean: on Stranger Tides, 2011]

     

     

    <캐리비안의 해적 4 - 낯선 조류>의 포스터

     

    <캐리비안의 해적 4>를 보고나서 많은 분들의 리뷰를 읽고 그에 따른 반응들을 보고 느낀점이 기존 3부작이 따로 원작이 없었것과 달리 이번 작품이 팀 파워스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지만 블랙비어드와 같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해적에 대한 정보가 없이 그저 만화 "원피스"에서 본거 같다는 식의 정보만은 가진 분이 많기에 조금 충격이었다.

     

    4편 낯선조류는 기존 시리즈와 달리 원작이 존재한다

     

    사실 해적 영화라는 장르자체가 존재하긴 했으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이전의 것들은 국내에서 그닥 인기를 끌지 못하였고 그것들은 <캐리비안의 해적>보다 현실종속성이 떨어진다. 즉, <캐리비안의 해적>은 내용에서 판타지적 요소를 첨가하고 시대적 배열이 좀 어긋나는 점은 있으나, 캐릭터의 소재나 일부 역사적 사건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그들을 조합하였고 <마스터 앤 커맨더>와 같은 상세한 항해묘사정도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실제에 가까운 모습들을 종종 보여줌으로서(종종이긴하나...) 사실적이면서도 재미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기에 역사쪽도 좋아하는 본인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이전 해적 영화 장르보다 좋게 보았었다.


    하지만 여러 글들을 보고 그에따른 반응들을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항해시대에 대한 거시적인 것 즉, 중고등학교때의 지식만을 가지고있었으며 심지어는 그마저 잊어버린 이가 많았다. 그렇기에 이미 영화 기법적 분석을 한 분들은 많기에 본인은 역사적 관점으로 영화를 분석해보기로 하겠다.

     

    <캐리비안의 해적>을 역사적으로 분석해보자

     


    [<캐리비안의 해적 4>는 역사적으로 어느 시기일까?]            

     

    실제 조지 2세의 모습

     

    이번작품은 대항해시대("해적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대해적시대라고 할수도 있을 정도로 해적이 들끓었던 시대")의 끝 이후를 다루는듯한데 그 이유는 조지 2세가 영국왕이고 그의 재위시기(1727∼1760년)이기 때문이다. 허나 영화의 실제 기반 연대를 좀더 상세히 따져보자면 검은 수염이라는 악명을 떨쳤던 대해적 에드워드 티치는 1718년 11월 22일 로버트 메이너드가 이끄는 해병에게 살해당하고말기에 조지 2세의 재위시기와 에드워드 티치의 시대가 맞지 않는 점을 볼수있다. 그렇기에 다만 대략적인 역사적 시점만을 짚어야겠는데 조지 2세가 나이가 좀 있게 극중에 출연했으며  1743년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1740~1748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왕위계승을 둘러싼 전쟁)에 출전하고 7년전쟁(1756~1763년)에도 참여한 것을 보면 그가 느긋하게 카리브 해에서 일게 해적 잭 스페로우를 만나는 짬을 낸 시기는 유럽의 정세가 덜 어지러웠던 1730년대쯤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뭐 그래보았자 1628년의 권리청원과 1689년의 권리장전이후의 입헌 군주정시기 왕으로 그의 아버지 독일계 조지 1세의 하노버 왕조시기라 내각 책임제가 발달하던 시기고 영국의 휘그당이 득세하던 시기라 조지 2세의 대영제국에 대한 영향력 자체는 그닥 크지 않다고 볼수있겠다.

     

     

    [해적의 역사]                                                                           

     

    각설하고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해적의 역사에대해 간단히 집고 넘어가야겠다.


    일단 고대세계의 루카 해적, 해양 민족, 실리시아 해적은 넘어가기로 하고 덤으로 대항해시대 이전의 중세 시기에 존재했던 노르만, 바이킹도 글이 길어질테니 그냥 넘어가기로하자.


    다만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바르보사의 이름을 따온 역사적 인물이라 짐작되는 1470년 태어나 1547년 사망할때까지 오스만 투르크의 지중해 지배에 큰 도움을 주었던 일명 "스페인의 재앙", "붉은수염" 바르바로사 형제의 이야기는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이 형제는 16세기 바르바리 코르세어중 가장 유명한 이들로 바르바리 해안(현재의 리비아, 알제리 인근 해역)의 대부분을 지배하였으며 스페인을 상대로 이슬람교도로서 성전(聖戰)을 벌였던 걸출한 인물들이다. 바르바리 해적에는 이들 외에도 "바다의 선장" 무라트 라이스, 울루지 알리 등 걸출한 인물이 많으나 일단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시간대와는 맞지 않으니 이만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바르바리 해적의 전성기는 1650년경이 끝이라고 볼수있겠다. 그 이후에도 활동하긴하지만 말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펠리페 2세 그리고 프랜시스 드레이크

     

    유럽과 캐리비안 해(카리브 해)로의 항로를 개척한 1492년 콜럼버스의 항로 발견, 1571년의 레판토 해전과 펠리페 2세의 무적함대, 스페인 보물선단, 삼각무역 등으로 나타낼수있는 스페인의 전성기적 무용담은 본격적인 대항해시대의 서막을 열었고 동시에 그 보물선단과 기타 선박들의 떡고물을 노리는 해적도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특히 이 시기는 영국의 엘리자세스 여왕이 인증한 사략선(일종의 국가가 인정한 해적질, 자신의 국가와 적이 되는 상대편 국가의 배를 공격하고 나포할수 있는 권리를 준것임)들의 활동이 돋보이는데 대표적인 사략선 선장은 "El Dragon"이라는 별명의 프랜시스 드레이크, 존 호킨스와 같은 영국 계와 장 플로랭, "장브 드 부아(나무 의족 단 사람)" 프랑수아 르 클레와 같은 프랑스 계  등을 들수있겠다.


    그리고 이 사략선들의 등장이후에는 더 기세가 붙어서 해적이 들끓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전설적 해적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기이다. 해적중 가장 성공한 삶을 살았던 헨리 모건, 잔인하고 자비 없던 해적 장 롤로네와 로크 브라질리아노, 육상에서도 뛰어났던 미셸 드 그라몽 등이 등장했던 시기가 1600~1700년 까지의 100년간의 일이다. 이 시기에는 토르투가와 포트 로열이라는 아메리카 신세계의 소돔이 만들어졌는데 이 두 도시는 말 그대로 해적들의 은신처이자 그들의 소굴이었고 당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사악하고 반역적인" 도시였다.

     

     

    극중 잭 스페로우의 졸리 로저(해적기, 좌측)와 바르보사의 졸리로저(해적기, 우측)

     

    그리고 마지막 시기이자 가장 찬란했던 시기인 1700~1730년 해적의 황금기, 일명 "대해적시대"는 1700년 최초의 검은색 졸리 로저(Jolly Roger, 해적기)가 사용되고  윌리엄 키드(주로 인도양에서 활동한 이 해적은 그의 활동 자체보다 그가 숨겨놓았다고 퍼져있는 보물 전설로 유명하다)가 1701년 5월 처형당하면서 그 막을 열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1714년~1722년까지의 8년이 짧고 굵은 해적의 전성기였다.(이 전성기적의 시기를 지난 조지 2세 시기를 말하는 <캐러비안의 해적 4>는 그렇기에 이전 세작품보다 못한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조금 든다.)

     

    헨리모건, 바르톨로뮤 로버츠 등의 초상화 - 자세한 것은 서적 "해적의 역사" 참고

     

    아무튼 저 황금의 8년은 "블랙비어드(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캘리코" 잭 래캄과 그의 휘하에 있던 두 여해적 제임스 보니와 메리 리드, "블랙 바트(검은 남작)" 바르톨로뮤 로버츠, "신사해적" 스티트 보넷, 속임수의 대가였던 하웰 데이비스 등이 활동하던 시기로 <캐러비안의 해적 4>에 등장하는 "블랙비어드(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가 대표격이라 할수있겠다.

     

    대표적인 유령선 전설로 알려져있는 데비존스의 "플라잉 더치맨"호

     

    추가로 데비존스의 "플라잉 더치맨"호는 당시 해적들과 일반인들 사이에 내려오던 전설같은 것으로 실존한다기 보다는 유령선의 전설의 대표적 이야기로 보면 되겠다. 그리고 3편에 등장한 주윤발이 연기한 사오펭은 장보자(張保仔, 청포자이)라는 해적을 기원으로한다는데 개인적 의견으로는 아마 명청교체기의 인물이자 타이완의 영웅으로 여겨지는 정성공(콕싱가), 남중국해 해적연합의 수장 정을과 그의 부인 정일수, 홍콩유역에서 활동한 삽응차이 등을 섞어서 만든 인물같다. 칼립소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님프가 기원인듯하고 말이다.

     

     

    [영화속에서의 "검은 수염"과 실제 "검은 수염"]                     

     

    악명 높았던 해적 "블랙비어드" 에드워드 티치

     

    "블랙비어드"는 시커먼 턱수염, 검은 장식 띠, 세자루의 피스톨 그리고 불타는 도화선 등으로 묘사되는 무시무시한 해적 선장 에드워드 티치의 별명이다. 그는  40문의 대포로 무장한 선박 "앤 여왕의 복수"호의 주인이었으나 1718년 5월 모래톱에 좌초하여 배를 그 배를 잃고 다른 배로 갈아타게되며 결국 1718년 11월 22일 새벽 영국해군 메이너드 대위에게 목이 잘려 죽고만다. 이 인물은 그의 카리스마와 졸리 로저(해적기)만으로도 왠만한 선박은 항복하고마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가진 이라 후대에 많은 해적 문학(이 문학들이 해적들을 낭만스럽게 묘사하여 당시의 처철하고 잔악하며 먹고 살기위한 무뢰배들의 수단이던 해적질을 현대 사람들이 약간은 감상적으로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당시 해적이란 요즘의 소말리아 해적 등과 비슷한 처지이거나 잔인함과 그닥 얻는게 적은 일상 등이 더 심하면 심했지 약하지는 않았다고한다. 오죽하면 몇몇 유명 해적의 이야기 외의 대다수의 소규모 해적들은 다들 상선도 아니고 일반 어선 등을 털어서 연명했다고 하니까.)에서 악마적 능력과 외양을 지닌 이로 묘사되곤한다.

     

     

    [영화속에 등장한 느닷없는 종교분쟁]                                            

     

    목사와 인어 커플의 이야기는 왜 넣은것일까?

     

    <캐러비안의 해적 4>에서도 "블랙비어드" 에드워드 티치는 배의 밧줄을 자유자제로 다루는 악마 숭배자로 등장하는데, 부두교 신자로서 등장한다. 여기서의 의문은 하필이면 부두교일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카리브 해의 서인도제도에 팔려간 흑인 노예들 사이에서 퍼진 이 민간 신앙이 당시에도 초기의 모습으로 존재 했겠으나 엄연히 비흑인이었던 에드워드 티치가 극중에서 이 종교를 믿고 부두교에서도 신성한 성직자만이 할수있다는 좀비 주술과 공감 주술등을 사용하는 모습은 이번 "낯선 조류"의 원작을 읽어 보지는 않아 짐작이 조심스러우나, 아마 원작자의 종교관이 반영된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 4 - 낯선 조류>만을 놓고 볼시 생명의 샘(혹은 젊음의 샘, 청춘의 샘 등으로 불림)이라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에아신의 물동이 등으로 나타내지는 전세계적인 생명 상징의 하나를 이교도적이라며 굳이 힘과 돈을 들여 찾아 내어서 부수어 버리는 스페인 카톨릭 병사들의 이야기나 아름다운 인어를 유일하게 걱정하는 인간적 인물로 등장하는 목사의 모습이 부두교 신자인 에드워드 티치의 모습과 비교되는 점을 들어서 설명하자면, 일종의 종교적 우월주의가 아닐까 짐작된다. 이러한 스토리 원작자의 종교적 사상이 이 글을 쓰는 본인과는 맞지 않기에 조금 불편하였다.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부두교에 대한 일반적 폄하와 오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잘 알려주는 책인 "부두교 - 왜곡된 아프리카의 정신"을 참조하길 바란다.)

     

     

    [이전 시리즈의 재미를 선사하지 못한 4편]          

                        

    게다가 이러한 종교이야기라는 곁다리를 얹음으로서 이전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주었던 재미를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하였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캐러비안의 해적 1>은 디즈니가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놀이기구를 선전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성공할줄 몰랐다고하는데, 일단 제작자측은 조니 뎁이 마음대로 설정해버린 잭 스페로우라는 캐릭터에 불만이었고 <컷스로트 아일랜드>와 같은 기존 해적 영화들의 실패 사례(<컷스로트 아일랜드>는 1억달러의 제작비에 1천만 달러의 수익만을 거두어 들인 기네스북에 '사상 최악의 흥행 실패 영화'로 등록되어있는 해적 영화이다)는 <캐리비안의 해적 1>에 대해 불안감을 디즈니에 안겨주었었다. 사실 놀이기구 "캐리비안의 해적"은 1967년 오픈한 40년이상된 놀이기구로서 우리나라 놀이 공원에 비슷한 것을 뽑다면 "신밧드의 모험" 정도와 비슷한 놀이기구이다. 이 캐캐묵은 놀이 기구를 모티브로삼아 영화를 만든다기에 많은 이들이 "차라리 매직 라이드로 만들어라" 등의 비꼬는 말을 하였지만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 1>은 거짓말처럼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조니 뎁이라는 인물이 제리 브룩하이머라는 거물 제작자의 말과 디즈니 간부들의 말을 무시한채 정한 "18세기의 록스타"이미지의 치졸하고 건들거리는 악당 해적이라는 기존 헐리우드 영화나 해적 문학의 성인군자 해적, 로망스 해적의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한 모습에 사람들이 끌린 것이리라.

     

    잭 스페로우 이미지의 모티브이자 극중 잭의 아버지로 등장한 "롤링스톤즈"의 키스 리처드

     

    조니 뎁은 잭 스페로우의 이미지를 "18세기의 록스타"답게 롤링 스톤즈의 키스 리처드에서 따왔다고하는데, 실제로 키스 리처드는 자신을 모티브로 했다는 말에 끌려서 <캐러비안의 해적 3, 4편>에서 잭 스페로우의 아버지 역할로 출연하여 무대위에서가아닌 스크린 위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아무튼 1편의 대단한 성공은 잭 스페로우라는 기존 해적 문학과 영화를 탈피한 캐릭터와 일방적으로 악당이 아닌 안티테제적 캐릭터들을 보여주는 참신한 구도에 기인하는, 한마디로 "의외성"이라는 요소에 기반을 둔듯하다.


    "이렇게 할것이다"라고 짐작하면 전혀 관객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천방지축으로 행동하는듯 보이지만 어떠한 뚜렸한 결과를 완성시켜가는 잭 스페로우라는 미워할수 없는 매력적인 악당 캐릭터와 사악하지만은 않은 각자의 이유를 가진 여러 매력적인 악당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스릴러물에서나 느낄 법한 이야기 전개에대한 "추리"적 요소가 주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1편만은 못하나 2, 3편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었는데 이번 4편은 그렇지 못하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 크림빵을 샹들리에에 꼿아 넣은 순간부터 그걸 먹으면서 도망가는 씬이 나오겠구나가 짐작 되었고, 마차에 올라타면서 부터는 차에서 차로 그리고 사람머리위로 도망가는 장면이 바로 짐작 되었다. 이렇듯 너무나 쉽게 짐작되는 여러 상황들은 기존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주었던 재미를 주지 못하였고 뻔하다싶은 장면에 계속 되면서 좀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짐작이 가능해 짐으로서다이나믹한 인간관계로 재미를 선사해주었던 이전 작품의 전개가 주었던 관계의 유동성을 잘 활용하지 못하게된것이다.(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되는 등 곡예에 가깝게 서로의 입장을 마구 교환하는 유동적 인간관계가 짐작 가능해 진 스토리 라인에서는 그 묘미를 잘 발휘하지 못하였다.)

     

    바르보사와 잭 스페로우는 블랙펄 호의 선상반란 이전에는 죽이 잘맞는 콤비였을듯

     

    유일하게 짐작할수 없어 기뻤던 장면은 야자수나무가 나왔던 씬으로 로프와 야자열매를 이용한 흥미진진한 모습들이 참신했고, 잭 스페로우와 바르보사의 손발이 척척 맞는것을 보면서 <캐러비안의 해적 1> 이전의 이야기일 잭 스페로우 선장과 바르보사가 함께 블랙펄 호에서 활동하던 시기 얼마나 마음이 잘 맞았을까라는 유쾌한 상상이 떠올라 즐거웠다.


    마지막 스페인 군대가 샘을 파괴하러 온 목적을 말한 순간에는 짐작도 못한 것보다는 어이가 없었고 시크릿 영상에 나올줄 알았던 인어와 목사의 모습대신 등장한 어이없는 다음편 예고 장면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차라리 몽환적이게 인어의 키스를 받은 목사가 영화 <스플래쉬>의 알렌처럼 함께 바다를 유영하는 모습으로 크레딧 올라가는 장면을 꾸미고 마지막 부분에 그들이 인어 때와 조우하여 그녀들이 방긋 웃는 모습으로 마무리했더라면, 그리고 시크릿 영상으로는 다음편 예고를 다른 식으로 했더라면 어떠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인어와 목사를 찍던 카메라가 뒤로 쭉빠지면서 다른 쪽 바다를 비추어 쭉 확대하는데 그 확대된 초점의 끝에서 등장하는 물밑에서 다니던 "플라잉 더치맨" 호와 제2의 데비 존스가 된 올란도 블룸의 카메오 출현과 같은 의미심장하면서도 거창한 시크릿 영상을 기대했는데 그 맥빠지던 영상은 좀 실망이었다. 애초에 논리적으로 그 인형이 어떻게 거기까지 올수있는가?)

     

    잭 스페로우의 인형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영화 말미에 잭 스페로우가 스스로 말한 해적과 삶에대한 자신의 의견 장면은 빼는게 좋을듯하다. 이전 작품들에서 잭 스페로우라는 캐릭터는 "알수 없는 인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로서 의외성의 상징이며 하나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세계의 질서를 구성하는 하나의 관념 즉, 북구 신화의 로키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에 매력적이었으나, 4편에서 자신의 생각과 삶을 하나하나 밝혀버려 결국 자신도 한명의 인간이며 사랑하는 여인도 있다는 것을 관객이 간접적으로 알게하는것도 아닌 직접적으로 밝힘은 잭 스페로우의 매력을 깍아내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간접적으로 알게해주었다면 관객은 긴가민가하며 다음에는 어떤 여인을 만날지, 어떠한 과거가 있을지, 어떠한 생각을 하고 행동할지 추측하며 어디로 튈지모를 카오스적인 캐릭터의 매력에 더 흠뻑 빠져들었을 텐데 카오스적 캐릭터이자 로키의 구현으로 보이는 잭 스페로우가 일반적 인간의 단계로 끌어내려지고 관객이 그의 사고를 일부나마 짐작할수 있게되니 매력이 감해진듯한 느낌이든다.


    그리고 해적이라는 주제로 이전에는 배와 바다의 이야기를 했다면 4편은 땅위에서 벌어지는 유적지 탐사이야기를 다루었는데, 그렇기에 약간 <인디아나 존스>틱한 느낌이 들고 기존 시리즈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물론 간간히 등장한 여러 뮤지컬과 영화 <시카고>로 유명한 감독 롭 마샬의 뮤지컬적 요소들은 색다른 재미를 주었으나(배위에서의 탱고씬, 열정적 라틴 여성의 모습 등) 너무나 "해적" 답지 않았던 이번 작품은<캐리비안의 해적>이라기에는 좀 어색했다. <캐리비안의 탐험가>가 더 어울릴 것이다.


    <슈렉>의 작가였던 테드 엘리엇과 테드 로시오 콤비가 보여주었던 "해적 영화라는 장르를 비튼" 1편의 참신함과 그 참신함을 어느정도 이어갔던 아이러니적 상황과 여러 패러독스들이 빚어낸 웃음코드를 내어준 2, 3편이 가졌던 특유의 재미가 소설 원작이라는 제한 조건을 내걸어버리니 소설의 스토리에 묻혀버려 그 재치가 드러나지 못했다. 영상적 재미는 여전했지만 스토리적 재미가 반감해버리니 개인적으로는 마음속의 "수작"이 "범작"으로 바뀌어버린 느낌이었다.

     

    궁금한 점이 있는데, 앞선 시리즈의 이 재미있던 조연들은 왜 등장하지 않은걸까

     

    게다가 이것이 새로운 3부작의 첫편이라하니 그 첫걸음이 너무 미진하여 불안해진다. 물론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해서라도, 조니 뎁을 보기위해서라도 극장에 갈테지만 팬의 입장으로서 이러한 실망감을 한번 더 안겨준다면 정말 슬플것같다.

     

     

    [영화 바깥 이야기]                                                                              

     

    <캐리비안의 해적 4>의 감독과 배우들

     

    아무튼 개인적으로 스토리상 좀 실망스럽긴 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여전히 뛰어난 영상을 보여주었고 조니 뎁과 제프리 러쉬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이안 멕쉐인이 초반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고 후반에 사그라드는 카리스마를 보여준점은 헛웃음이 나왔지만, 페넬로페 크루즈가 등장씬의 빈도에 비해 캐릭터의 인상이 깊지 못함은 그녀가 임신중이었고 종종 힘들어하는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친여동생이 대역으로 등장한 씬이 많았다는 점을 알고나니 좀 용서가 되었다. 심지어 임신 중에 촬영을 했음에도 그 몸매를 유지하여 여전히 아름다운 라틴 여성의 매력을 뽐내며 고된 촬영을 하는 그녀를 보니 영화 상에서의 미진함이 용서가 된다.(연기는 잘했으나 뭔가 임팩트가 강하지 못한듯 안젤리카라는 캐릭터의 인상이 흐릿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말하면서 음악감독 한스짐머를 빼놓을수 없는데, 오토바이 경주를 생각하며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타이틀 곡을 만들었다는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되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인어역의 배우들

     

    4편에 있어 아름다운 인어들의 이야기를 빼놓을수 없는데 이에 곁들여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고집으로 가슴 성형수술을한 여배우는 고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고 그렇기에 고용된 인어역의 인물들이나 극중 모든 여성들은 가슴 성형수술을 안한 이들이라한다.(심지어 키이라 나이틀리가 가슴 수술을 해서 4편에 짤렸다는 소문도 있을정도) 아무튼 대표적 베이비페이스 모델인 젬마 워드를 비롯하여 Antoinette Nikprelaj 등이 맡은 인어라는 배역은 정말 아름다웠다.


    허나 아름다운 장면 이후에 전개된 무슨 날치떼마냥 펄떨펄떨 뛰는 모습이나 스파이더맨 마냥 손에서 무슨 실같은 점액질이 나가는 모습은 오만 정이 뚝 떨어질 정도로 논리적 개연성과 영상미가 없어 눈을 가리고 싶었었다. 그래도 첫등장 씬에서 그녀들의 외모와 모습 자체는 정말 환상적이었고 몽환적이어서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마치며]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있는 미진한 새 3부작의 시작이지만 조니 뎁과 제작진들을 믿는다. 소설에서는 기반을 따왔으나 그 내용은 바꾸었다고하니 다음 작품에서는 다시금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매력을 되찾기를 빌며 이야기를 마치겠다.


    빨리 다음 작품이 나와 이번 작품의 미비함이  다음 작품을 위해 계산된 미비함이었다고, 본인의 실망은 잘못된 평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영화로서 당당히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 <캐러비안의 해적 5>를 기다려본다.

     

    젬마 워드

     

     

    * 출처 : 이글루 블로그, 내맘대로 영화해석 by 칼슈레이, 2011-05-25 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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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 도서

    - 해적의 역사, 앵거스 컨스텀 (지은이), 이종인 (옮긴이) | 가람기획 | 2002년 8월

    -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한잉신, 뤼팡 (지은이), 김정자 (옮긴이) | 베이직북스 | 2008년 6월

    -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해적의 역사, 브렌다 랄프 루이스 (지은이), 김지선 (옮긴이) | 북앤월드(EYE) | 2011년 5월

    - 해적과 제왕, 노엄 촘스키 (지은이), 지소철 (옮긴이) | 황소걸음 | 2004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