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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색출의 기술

BUZZWeb 2008. 12. 14. 12:45

[week&맛] 맛집 색출의 기술
처음 가보는 동네 식사는 해야겠고…아무거나 먹긴 싫을 때

 

가는 해를 돌아보며, 오는 해를 기대하며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 많은 때다. 꼼꼼한 이들은 어디에서 잘지, 가서 무얼 먹을지 몇 주 전부터 챙긴다. 물론 지갑 하나 들고 무작정 떠나는 기분파들도 있다. 이들은 배고프면 아무 데서나 한 끼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대충주의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나름의 멋이겠지만, 여행하며 누리는 즐거움의 반인 입 호사를 포기하기엔 뭔가 아쉽지 않은가. 그래서 무대책이 대책인 이런 이들을 위해 ‘맛집 색출의 기술’을 모아봤다. 심보 사나운 상사에게 걸려 갑자기 출장을 떠난 직장인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말하자면 연고 없는 동네에 가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맛집 찾기 실전 노하우다.

 

안충기 기자

 

 

1. 휴대전화의 새 용도

 

맛집은 동네 사람이 제일 잘 안다. 전주에 간다면 휴대전화 전화부에서 전주에 살거나 전주 출신인 사람을 찾아보라. 돈 꿔달라는 소리도 아니고, 동네 맛집 어디냐고 묻는데 야박하게 전화 끊을 사람 없다. 운 좋으면 대접까지 받을 수 있다.

 

출장 중에 단양을 지나갈 때였다. 마침 밥 때가 되어 식당을 찾다 퍼뜩 생각이 나 거기서 교사로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소개해준 ‘마늘밥 식당’에서 나오며 일행들이 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전화 한 통으로 친구가 얼마 전에 청주로 전근 간 사실까지 알았으니 ‘밥 잘 먹고 소식 듣고’다.

 

경찰서에 전화를 거는 ‘엉뚱이’도 있다. 입구마다 걸려 있는 ‘뭘 도와드릴까요’라는 안내 문구를 믿고서다. 의외로 친절한 안내에 감동 먹었다는 경험담도 있다. 단, 다짜고짜 밥집 알려달라면 장난 전화로 오해할 수 있으니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해 보라. 좀 더 차원 높은 방법이 있다. 군청이나 시청에 전화 걸어 문화해설사를 소개받는 것이다. 대개 나이 좀 들고 지역 사정에 해박한 이들이다. 전화 받으면 반갑고 친절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음식도 문화 아닌가.

 

2. 수퍼마켓 아줌마, 택시 기사

 

그도 귀찮으면 눈 앞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단, 사람은 가릴 것. 택시기사는 틀림없다. 지역 맛집의 실시간 정보가 기사들의 손바닥 안에 있다. 택시를 타고 슬쩍 한마디 던져보라. 기사들이 잘 간다는 식당은 믿어도 좋다.

 

다음이 동네 가게다. 카운터를 대개 젊은 친구들이 맡고 있는 24시간 편의점은 아니다. 나이 좀 들어 보이는 주인이 앉아 있는,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수퍼마켓이 딱 좋다. 깡통커피 하나 사들고 “아줌씨(또는 아저씨) 서울 촌놈이 배가 고파요…” 하면 “아이고 이걸 어째, 뭐가 먹고 싶은데” 하며 줄줄이 나온다.


3. 재래시장의 비밀

 

오래 된 시장엔 당연히 오래 된 밥집이 많다. 재래시장 입구에 좌판을 펴고 있는 할머니가 공략 포인트. 그분들이 가리키는 집은 확실하다. 자기 가게를 가지고 있는 주인보다 시장 안 밥집들과의 이해관계가 적기 때문이다. 간판에 4대째니, 30년이니 하며 역사와 전통을 내세운 식당이 많지만 시장 안의 맛집들은 그런 거 없이도 단골이 끊이지 않는다. 음식점이 몰려 있는 먹자골목도 괜찮다. 골목이래봐야 대개 10여 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며 가게 안의 동정을 살펴보라. 손님이 북적거리면 그냥 문열고 들어가라. 큰길가보다 뒷골목에 이런 집이 많다. 큰길가 번쩍이는 가게의 맛은 대개 깔끔하지만 감동은 떨어진다. 손님들도 뜨내기가 많다.


4. 들어갈까 말까

 

안테나가 포착한 식당 앞에 선 당신, 다음의 조건에 맞으면 주저 말고 문을 열라.

 

▶줄지어 선 손님=자리가 꽉 차는 건 보나마나 맛 때문이다. 간판에 똑같이 ‘원조’를 걸어놓았지만 어느 집이 진짜 원조인지는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른다. 이럴 땐 사람 많은 집이 원조일 확률이 90%다.

▶단출한 메뉴=자신 있는 집은 상차림이 간단하다. 한 가지만 하는 집은 확실하다. 세 가지까지 괜찮다. 백화점식 차림표는 대표 음식이 없다는 것이다. 음식 잘하는 집들은 대개 □□김치찌개, ○○뚝배기, △△해물탕처럼 간판에 대표 메뉴가 들어가 있다.

▶가게 밖에 쌓인 야채=가게 밖에 배추나 무가 많이 쌓여 있다면 직접 김치를 담가 내는 집이고, 손님이 많아 반찬을 자주 만드는 집이다.

▶주인의 관록=딱 보아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식당이 있다. 손때 묻은 주방에 할머니가 있으면 딱이다. 주인의 손님 대하는 품이 격의 없는 집은 손맛도 그만큼 좋다.

▶이도 저도 아니면=미련 없이 발길을 돌려라. 관광버스 줄지어 선 집에선 제대로 대접받았다는 느낌 받기 힘들다 . 일본인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집은 맛이 싱겁기 십상이다.


5. 제대로 골라 제대로 먹기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으면 시킬 일만 남았다.

 

▶주저없이 외쳐라 “사장니~임”=쥔장이나 종업원이 자신 있게 추천하는 메뉴가 진짜다.

▶눈치의 힘=물어보기 싫으면 옆사람들이 먹는 걸 보라. 삼겹살 시켜놓고 굽다가 주위의 눈초리가 이상해 보니, 다들 돼지갈비 먹고 있으면 허탈하다.

▶남으면 아까워= 맛뿐만 아니라 양 때문에 소문난 집도 많다. 덜컥 시켰다가 다 못 먹어 난감한 경우도 있으니 시키기 전에 양을 물어보자.

▶로마에 가면 로마 법=부산에선 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목포에선 순대를 초고추장이나 소금에 찍어먹는다. 동네마다 음식마다 먹는 방법이 있다. 묻는 자에게 복이 있다. 주인에게 물어보자. 최적의 맛 조합을 알려줄 것이다.


6. 그리고 몇 가지

 

▶민원인, 접대 많은 관공서나 법원 근처엔 한정식 집이, 경찰서 앞에는 설렁탕과 국밥 집이, 여행객 많은 역전에는 해장국 집이 많다.

▶요즘 지자체 관광객 모시려 난리다. 시청이나 군청에 가면 그 지역의 맛집 정보가 들어있는 지역 안내도를 어디나 갖춰놓고 있다. 두리번거릴 것도 없다. 입구에 쌓여 있으니 말이다. 여기 등장하는 집들, 기본은 한다. 소설가 이외수가 가장 싫어하는 게 관에 가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관에 가는 것도 쓸모가 있다.

▶하나 더, 맛집이란 것이 매스컴을 한번 타면 줄줄이 인터뷰 행진이 이어지는 속성이 있다. 언론 탔다고 자랑하는 집 너무 믿지 마라. 정말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집도 있고, 매스컴을 이용해 가게 값 올린 뒤 팔아치우고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는 ‘선수’도 있다.

 

안충기 기자 [newnew9@joongang.co.kr] 

 


* 출처 : 중앙일보, 2008.12.11 16:53 입력 / 2008.12.13 02:41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