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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또 다른 나 '도플갱어' (카그라스 증후군)

BUZZWeb 2011. 5. 27. 10:03

내가 아닌 또 다른 나 '도플갱어'
환영인가 실체인가…미신으로 단정짓기 어려운 초자연적 현상


박소란 기자 psr@sed.co.kr1 
 

세상 어딘가에 나와 모든 것이 똑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그 혹은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동일한 시공간 속에서 내가 아닌 나를 보게 되는 현상을 흔히 '도플갱어'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갖가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일각에서는 죽음에 얽힌 심령현상이나 심적 충격에 의한 정신질환으로 보기도 한다. 도플갱어의 실체는 무엇일까.

 

어느 날 독일의 한 청년은 길을 가던 중 맞은편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목격한다. 옷 차림 외에는 모든 것이 똑같은 또 다른 자신의 모습에 놀란 청년은 그대로 자리에 멈춰섰고 또 다른 자신은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이런 일은 몇 번이고 반복됐다.

 

이 청년은 다름 아닌 독일의 대문호 괴테다. 훗날 괴테는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별의 아픔으로 힘들어했던 때, 또 다른 자신과의 만남이 큰 위안이 됐다고 썼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괴테와 동일한 경험을 한다면 그처럼 의연할 수 있을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호러 영화 속 주인공처럼 오싹해진 등골을 겨우 추스르며 삼십육계 줄행랑을 칠 것이다.

 

두 명의 나

 

괴테가 경험한 것은 이른바 도플갱어 (Doppelganger)다. 이는 독일의 한 지방 민담에서 유래된 말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란 뜻을 갖고 있다. 구분이 안갈 만큼 닮은 사람, 다시 말해 '나'와 동일한 '또 다른 나'를 지칭한다. 우리 말로는 분신(分身) 혹은 생령(生靈)쯤 된다고 하겠다.

 

도플갱어 현상에 대한 구체적 해석은 국가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죽음과 관련된 것이 많다. 자신의 도플갱어를 경험하면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이 핵심. 이런 점 때문인지 도플갱어는 괴담 형태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본 후 특별한 이유없이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는 식이다.

 

도플갱어가 죽음의 전조가 된 셈이다. 이러한 해석의 이유 역시 다양하다. 도플갱어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것이어서 죽음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있고, 평행우주 이론에 의거해 동일한 개체가 동일한 시공간에서 만나면 우주의 붕괴를 초래하므로 한쪽 개체의 죽음을 통해 이를 막는 것이라는 다소 황망한 분석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단순히 도플갱어에 놀라 심장마비로 즉사했다거나 정신적 충격을 못 이겨 자살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도플갱어가 죽음과 관련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괴테의 예가 그렇다. 특히 괴테는 절친한 친구의 도플갱어를 목격한 일도 있다고 전해진다.

 

친구가 슬리퍼에 잠옷 차림으로 거리에 서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친구의 집으로 가보니 친구는 그 옷차림 그대로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 이 일화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괴테가 83세까지 장수했다는 점에서 그에게 도플갱어는 죽음의 전조가 아니었던 것 만큼은 확실하다.

 

한편 도플갱어가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신호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한 여인이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기차 여행을 하던 중 기차에서 내리라며 손짓하는 약혼자의 환영을 보고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내린 뒤 기차가 탈선, 생명을 구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당시 약혼자는 기차역에서 졸고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만 보이는 환영

 

도플갱어는 특별한 사람들만 경험하는 게 아니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방문을 열었는데 내가 책상에 앉아있다거나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실제와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도 도플갱어의 하나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도플갱어의 분신은 나보다 앞서 걸어가기도 하고 뒤따라오기도 하며 마주 본 채 나와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기도 한다. 모습은 현재의 나와 같은 경우가 대다수지만 어린 시절 혹은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다. 특이할만한 부분은 나와 정확히 일치하는 외모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외에는 주변의 누구도 이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혼자만의 환영처럼 내 주변을 지나갈 뿐이다. 그렇다면 도플갱어의 실체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크게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심령술, 독심술, 텔레파시와 같은 초자연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정신적 충격이 크거 나 충동을 제어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정신질환으로 보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를 중시하는 오늘날에는 주로 후자를 합리적 견해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현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도플갱어는 실재하지 않는 환영이다.

 

충격이나 충동에 의해 자기도취적 성향이 강해지면 현실에서 자신과 동일한 대상의 환영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괴테의 경우도 연인과 헤어져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신적 착란 증세로 본다. 괴테가 그때의 경험에 대해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봤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이러한 해석에 더욱 신빙성이 있다.

 

도플갱어를 당사자만 인지한다는 사실이나 주로 자신이 바라던 이상형 혹은 자신의 실제 성격과 반대 모습을 지닌다는 특징도 실체가 없는 개인적· 정신적 환영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한다. 이 같은 일련의 현상을 학계에서는 '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으로 설명하곤 한다.

 

카그라스 증후군은 1920년대 프랑스의 한 정신과 의사가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 동물, 물건이 진짜가 아닌 진짜와 꼭 닮은 가짜라고 믿는 망상이다. 대상 자체는 인식하지만 그 대상에 대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서 가짜라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정상인들이 가끔 사람이나 물건을 착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며 보통은 정신불열증 등의 질환을 앓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카그라스 증후군

 

카그라스 증후군에 걸리면 제3의 누군가를 자신과 꼭 닮았다거나 또 다른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물론 TV 속 등장인물들 모두가 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며 책상 위의 탁상시계가 어느 날 2개로 자가복제됐다고 느낄 수도 있다.

 

원인을 설명하는 학설은 많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측두엽 이상을 지목한다. 두뇌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대뇌 반구는 전두엽·측두엽·두정엽·후두엽 등 총 4개의 엽(葉)으로 구성되는데 측두엽은 인지 및 기억 기능을 조절한다. 측두엽이 손상되면 환각에 빠지거나 기억장애가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손상 부위가 오른쪽 측두엽일 경우에는 자신이 동시에 두 장소에 있는 것 같다거나 과거와 현재의 일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이를 감안하면 도플갱어는 개인의 망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짓기에는 한 가지 커다란 의문이 남는다. 신기하게도 도플갱어 경험자 중 상당수가 몇 년 후 자신이 목격했던 도플갱어 대상과 똑같은 차림새나 행동, 상황에 처한다는 게 그것이다. 길을 가던 중 저만치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도플갱어를 목격했다면 수년 뒤 자신이 그 와 동일한 차림으로, 동일한 버스를 타고, 그 길을 지나고 있음 을 불현듯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래의 자신을 도플갱 어로 미리 만나 본 셈으로서 이마저 정신질환이 일으킨 양상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물론 지 극히 이례적인 우연의 일치라거나 재현의 경험마저 망상으로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하다.

 

 도플갱어를 초자연적인 시각에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한 부분이다.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초끈이론에 근간한 공간이동 현상에 주목한다. 초끈이론은 우주의 최소 단위가 소립자보다 훨씬 작고 가는 끈으로 이뤄져 있으며 지속적인 끈의 진동에 의해 우주만물이 생성됐다고 설명한다.

이 이론에서는 우주를 생성과 소멸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빅뱅이론과 달리 영원히 성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존재로 본다. 또한 인류가 살고 있는 우주 외에 수많은 다른 우주가 각각의 물리법칙을 가진 채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내 안의 모순된 이중성

 

결국 초끈이론에 의하면 도플갱어는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던 내가, 내가 살고있는 시공간으로 잠시 건너온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런 초자연적 현상은 현 시점에서 명확한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무조건 미신으로 단정짓기도 어렵다.

 

일식이나 월식, 신기루, 도깨비불 등이 그랬던 것처럼 향후 과학이 발달하면 충분히 설명 가능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도플갱어의 실체를 무엇으로 보든간에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 이것 자체로 무척 매력적인 이야깃거리라는 점이다. 또 다른 내가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발상은 갖가지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도플갱어는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게임 등 각종 대중 예술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채택돼 왔다. 도플갱어 현상을 말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작품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다. 주지하다시피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각각 선과 악의 두 얼굴을 가진 존재며 인간의 잠재의식에 내재된 모순된 이중성을 은유적으로 상징한다.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몇 년 전 나온 일본 영화 '도플갱어'도 있다. 성공을 꿈꾸는 소심한 과학자가 어느 날 나타난 자신의 악마적 분신에 이끌려 의식적 혼란을 겪으며 차츰 파탄을 맞는다는 스토리다. 최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영화 '블랙스완'도 마찬가지다.

 

연약하고 순수한 발레리나가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내면 깊숙이 감춰진 백조의 어둡고 탐욕스런 면이 표출된다는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

 

이들 작품 속 도플갱어는 대체로 내적 세계, 특히 내면에 숨겨진 악마적 근성으로 묘사된다. 심리적 충격 속에서 탄생한 또 다른 나, 분열된 자아를 의미하는 것. 이밖에도 도플갱어 모티프를 차용한 작품은 셀 수 없이 많고 개별 작품마다 도플갱어에 대한 다양 한 해석을 낳고 있다.

 

 대중친화적 아이콘

 

 

한편 오늘날 도플갱어는 한층 대중친화적으로 진화했다. 죽음의 전조나 분열된 자아와 같은 무거운 이미지를 상당 부분 벗어던진 모습이다. 일례로 네티즌들은 외모가 비슷한 연예인 등 닮은꼴 유명인을 가리켜 흔히 도플갱어라 칭하며 친근감을 드러낸다. 현빈 도플갱어, 아이유 도플갱어 등이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로 랭크돼 있다.

 

도플갱어와 관련한 우스개 루머도 많다. 히틀러는 아직 살아있으며 세계 2차 대전 당시 죽은 히틀러는 그의 도플갱어라는 식의 소문이 인터넷 여기저기를 떠돈다.

 

이런 가운데 몇 년 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파티에서 자신의 도플갱어라 불리는 닮은꼴 코미디언 스티브 브리지스와 함께 연단에 올라 연설을 하며 재치있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고, 독일의 한 매체는 도플갱어 체험담을 공개 모집해 독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일본에서는 아예 도플갱어를 찾아준다는 사이트(omaru.cside.tv/pc/ dopperu.html)가 개설돼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이트 접속 후 이름, 생년월일, 성별, 혈액형,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덮밥 등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면 이런 식의 결과가 나온다. "○○씨의 도플갱어는 하와이에서 만담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도플갱어는 한때 비즈니스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야뇨증에 걸렸던 것이 계기가 돼 인생관이 바뀌었고 6개월 전 개명한 후 만담을 직업으로 택했다. 현재 그의 고민은 자신의 전화번호가 인근 식당 전화번호와 비슷해 종종 잘못된 전화가 걸려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당신보다 약 11% 정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물론 이 같은 결과를 진지하게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재미로 즐기면 족하다. 언젠가 과학이 발달하면 도플갱어의 실체는 지금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도플갱어는 우리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아이콘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 출처 : 서울경제,  2011/05/26 15: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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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 : 월경(越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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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도플갱어, 분열과 통합

 
치히로가 들어가기 원치 않던 터널 앞 장면, 돌로 만든 석상 하나가 웃고 있다. 앞뒤로 같은 얼굴인 이 석상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신화적인 모티프인 '도플갱어(Doppelganger)' 이미지를 보여준다. '또 다른 나', '나란히 걷는 자'라는 뜻을 가진 도플갱어는 한 인물의 두 가지 모습을 그리는데 종종 분신이나 쌍둥이 형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과 같은 영화의 직접적인 주제이며 '늑대인간'류의 호러 영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같은 소설, 『드라큘라』 같은 흡혈괴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박사의 관계같이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 변주, 발전하는 오래된 테마이다.

 

「페이스 오프」 「무간도」 「마스크」 「킬리만자로」와 같은 영화들도 도플갱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고 세계는 낮과 밤, 삶과 죽음으로 구성된다. 여자와 남자, 밝음과 어둠은 인간의 이중성이나 분신의 개념을 가능하게 했다. 융의 방식으로 말하면 한 인간 안의 그림자(shadow)와 자아(ego)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내 안의 다른 나, 혹은 나와 같은 다른 사람, 즉 나의 거울상(때로 그것은 뒤집혀 있기도 하다)에 관한 은유가 도플갱어이다.

 

이 작품에서는 실제로 한 인물인 센과 치히로의 관계나 쌍둥이 마녀 유바바와 제니바의 관계, 센과 하쿠의 관계 등은 모두 도플갱어적 관계들이다. 센과 치히로는 한 인물이다. 센은 귀신 세계에서 돼지로 변한 부모님을 구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힘겨운 일을 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 독립적인 여자아이인 반면, 치히로는 이사 가는 차 안에서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었다고 투정부리는 철없는 아이이다. 도플갱어적 관계의 설정을 통해 철딱서니 없는 여자아이는 성숙한 자아를 가진 철든 아이로 변화된다.

 

그리고 행방불명의 시간 동안 그 도플갱어적 분열은 통합된다. 유바바와 제니바도 한 인물의 두 가지 측면으로 보인다. 유바바는 인정사정없는 온천장의 여주인이지만 아기 보에게는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 어머니이다. 극단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반면 제니바는 유바바에 비해 훨씬 지적이고 어른스러운 인물이다.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하지만 역시 한 인물의 분화된 모습으로 여겨진다.

 

도플갱어 모티프는 자아의 분열과 통합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자아의 통합 과정에서 한쪽이 한쪽에 패하거나 죽거나 혹은 어떤 계기로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리된 두 인물이거나 한 인물의 두 측면이므로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한쪽도 사라지게 되는 운명공동체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도플갱어의 모습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일까? 혹시 이것이 일본적 자기분열을 표상하는 것은 아닐까? 「원령공주」에서 보여준 자연과 문명의 대결과 같은 외부적인 대결구도에 이어 자기 내부의 싸움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유바바와 제니바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대립하고, 센과 치히로는 한 여자아이의 안에서 공통점이 없는 성격들이다. 자기 혼돈과 분열의 표현은 자기 안의 싸움으로 형상화된다.

 

이들의 분열은 터널을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일가족은 분열의 귀신세계,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 혹은 개발하다가 멈춘 놀이동산으로 진입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알 수 없는 곳,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공존하는 판타스틱한 일본 신도(神道)적 신화 공간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 귀신세계는 바흐친적 축제적 시공간, 즉 크로노토프(cronotope)를 형상화하고 있다. 춤추고 노래하는 통음난무(通淫亂舞)적 시공간은 일시적인 억압의 해방구이다. 억압이 심하면 심할수록 반동적 분출의 힘도 강력하다. 오비디우스에 의하면 신화는 변신 이야기이다.

 

센은 치히로로 변하고, 유바바는 밤마다 인면조로 변한다. 하쿠는 푸른 용으로 변하고 아기 보는 조그만 생쥐로 변한다. 가오나시는 끝없이 음식을 먹어대는 괴물로 변하고 엄마 아빠는 돼지로 변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미덕(혹은 봉합)은 도플갱어적 존재들이 자기 분열을 해결하는 방식이 죽음이나 공멸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라는 점이다. 또한 하쿠 용에서 보듯이 자기 적멸(寂滅)을 통한 비상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플갱어적 세계에서 일본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신들의 세계와 화해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시욕'이라는 일본의 목욕 문화이다. 8백만 신이 와서 목욕을 하고 간다는 설정은 그래서 놀랍다. 일본에서 '목욕'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의식의 하나였다. 일본은 고온다습한 기후와 겨울의 난방을 위해 오래 전부터 목욕 문화가 발달했다. 특히 '시욕'이라 하여 다른 사람을 목욕시키면서 공덕을 쌓는다고 믿었다 하니 왜 센과 치히로의 무대가 온천장인지 짐작이 간다. '시욕'을 하는 행위는 신을 받들고 모시는 최고의 의례인 셈이다.

 

오물로 뒤덮인 강의 신을 목욕시키는 장면을 놓고 많은 비평가들이 환경문제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이는 일본의 '시욕' 풍습, 즉 목욕을 시켜주고 공덕을 쌓는 전통이라는 측면이 더 강한 것 같다. 그래서 오물신으로 오인 받았던 강의 신을 잘 모신 센/치히로는 만병통치약인 경단을 하나 얻는다. 신을 모시고 받든다는 의미에서 센에게도 샤먼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온천장은 신들에 시욕하고 그들을 위해 마츠리[祭]를 연다.

 

일본 신도에는 '이미'라는 관념이 있다고 한다. '이미'는 일종에 신성을 의미하는데 신성한 것과 부정한 것의 상반되는 요소가 함께 담겨 있다. 일본인들은 생명력이 가진 선악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생명의 고갈이 곧 악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마츠리'라 불리는 신도 의례를 통해 쇠퇴한 일상에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었다고 한다. 일상의 위기와 생명력의 고갈을 축제인 마츠리를 통해 정화하고 회복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명력' 자체가 최고의 신인 셈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신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은 일종의 마츠리이다. 그들은 목욕하고 마츠리를 통해 정화되면서, 생명력의 고갈을 회복하며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유바바의 온천장은 이런 마츠리의 장소이고 일본적 정신의 성소이다. 신들의 목욕, 일본적 정신의 부활이 흥겨운 마츠리,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의 형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 출처 : 미야자키 하야오, 김윤아, 2005.7.15, ㈜살림출판사 - 살림지식총서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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