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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서로 닮는 이유…‘거울 뉴런’의 비밀

BUZZWeb 2009. 3. 7. 01:54

부부가 서로 닮는 이유…‘거울 뉴런’의 비밀 

 

남종영 기자 

 

≫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고 다른 사람의 느낌을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뇌 속의 ‘거울 뉴런’ 때문이다. 우리들은 타인의 모습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비추고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미러링 피플〉
마르코 야코보니 지음·김미선 옮김/갤리온·1만3000원

20년 전쯤 일이다.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뇌과학 실험실. 머리에 전극을 꽂은 마카크 원숭이 한 마리가 조용히 앉아서 다음 과제를 기다리고 있다. 신경생리학자 비토리오 갈레세 박사는 별생각 없이 무엇인가 잡으려고 손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원숭이 뇌 안에 심어놓은 전극과 연결된 컴퓨터에서 신호음이 들렸다. 이상했다. 원숭이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를 집는 자신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인지 발달 안된 신생아 모방 등
신경 뉴런, 자동적으로 남 흉내
인간 자율성에 대한 믿음 위협
금세기 과학의 중요개념 떠올라


갈레세 박사는 컴퓨터 신호음을 분석했다. 원숭이의 뇌에서는 물건을 집는 운동세포가 작동했다. 물건을 쥐는 행위에 관여하는 뉴런(자극을 수용하고 전달하는 신경세포와 돌기)이 발화한 것이다. 유레카! 이것은 유전자(DNA)의 발견에 비견될 만한 뇌과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바로 ‘거울 뉴런’이다.

 

거울 뉴런은 전운동피질과 하두정피질의 작은 신경세포 회로에 존재하고 있었다. 마카크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거울뉴런은 컵을 쥐거나 미소를 짓는 등 다른 사람의 행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그런 행위를 하는 것처럼 활성화됐다. 누군가가 축구공을 찰 때, 공을 차고 있는 소리를 들을 때, 심지어 ‘차다’라는 단어를 말하거나 듣기만 해도 거울 뉴런은 발화됐다. 갈레세 박사는 결론 내렸다. 거울 뉴런은 모방 뉴런이다!

 

바닥에 놓인 아령만 봐도 무의식적으로 드는 상상을 한다.(실제 들었는지 들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거울 뉴런 작용 이후의 문제다.) 한 명이 하품을 하면 다른 사람도 따라서 하품을 한다. 인지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신생아도 모방을 한다. 어린이들은 서로 따라 하기를 즐긴다. 부부는 오래 살수록 닮아간다.

 

세계적 신경과학자 마르코 야코보니가 쓴 <미러링 피플>은 거울 뉴런의 발견과 운동, 감정, 중독 작용에 관한 지난 20년 동안의 학계 연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야코보니는 기존의 신경과학 체계를 비판한다. 지금까지 지각과 인지, 행위는 완전히 별개였다. 각각의 과정은 다른 상자에 담긴 기계에서 차례로 이뤄졌다. 하지만 거울 뉴런의 발견은 이런 근대적 단계론을 전복시켰다. 다른 사람이 움직이면 ‘성급한’ 거울 뉴런은 따라 하고 본다. 실제 행위를 할지, 안 할지는 후차적인 문제다. 뉴런은 자동으로 모방한다. 흉내는 인식을 앞선다.


거울 뉴런은 감정에도 관여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웃거나 우는 모습을 볼 때, 거울 뉴런은 우리 스스로의 얼굴이 웃거나 우는 것과 똑같이 발화한다. 거울 뉴런은 이내 인간 감정을 주관하는 변연계에 신호를 보낸다. 이윽고 얼굴은 표정을 짓고 인간은 슬픔, 기쁨을 느낀다. 야코보니는 인간의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찍어 ‘거울 뉴런-대뇌피질의 섬(insula)-변연계’로 이어지는 해부학적 연결망을 발견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우리가 모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방하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공감한다.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도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다른 사람의 표정 속에서 산다. 내가 내 표정 속에서 살고 있는 그를 느끼는 것처럼.”

 

사랑의 기초 신경도 거울 뉴런이다. 실험실 안에 사람들을 넣었다. 실험 대상자로 가장한 연구원이 잠입해 턱을 괴거나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편다. 일부 사람들이 따라 하기 시작한다. 실험이 끝나고 연구원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했다. 모방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호감도가 높았다. 그러고 보면 연인들은 서로 따라 한다.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을 따라 듣고 책을 좋아하면 책을 따라 읽는다. 부부가 닮아가는 이유도 이래서다.

 

거울 뉴런의 발견은 많은 숙제를 안겨준다. 미디어 폭력이 현실 폭력 증가의 원인이 아닌가? 어떻게 광고를 만들어야 거울 뉴런을 활성화시켜 소비로 연결시키는가? 그럼 정치 광고는 어떻게 만들까? 야코보니는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지금껏 진행된 사회적 연구도 소개한다.

 

하지만 거울 뉴런은 인간 자율성에 대한 근대적 믿음을 위협한다. 야코보니는 “거울 뉴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우리는 인간이 합리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주체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는 ‘나는 자동모방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세계에 사는 모방자들(미러링 피플)이었던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쓴 복제자 ‘밈’과도 통한다. 거울 뉴런은 이번 세기를 결정지을 과학의 중요한 개념이 될 것 같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출처 : 한겨레, 2009-03-06 오후 08:4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