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의 오피스정글] 두려움을 주는 직장
이준영 (트레이스존 대표) 2005/09/27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가들은 필요하다면 일체의 도덕적 구속에서 벗어나 정치를 행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당시의 이데아적 정치 이론을 타파하고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를 위한 포석이었다 한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이 알고 있는 마키아벨리즘은 권모술수를 당연시하고 권력의 장악만을 목표로 한 정치 행위를 지칭한다. 열려있지 않은 정치는 언제 어디서 누가 자신의 뒤통수를 칠 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즘의 핵심에는 정보의 비공개를 통한 권력의 장악이 위치하고 있다.
회사 또한 권력이 존재한다. 보통 그 권력은 기업의 소유자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주식 회사의 경우 대주주가 권력자가 되기도 하고 국영 기업이나 단체의 경우엔 정부 기관의 수장이나 관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이 존재하는 모든 회사는 그 권력의 유지를 위한 힘(power)과 그것을 빼앗으려는 힘이 투쟁한다. 투쟁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일상적이지만 대부분의 회사 구성원은 그것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또한 개입할 수 없다. 때문에 그저 이런 소리를 하게 된다, “회사 분위기가 좀 이상한 것 같아”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들
권력의 유지를 위한 갈등이 고조될수록 회사의 분위기는 경직되고 피고용인에 대한 압박은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수직적 위계 질서는 강화되고 수평적 토론 문화는 점점 더 형식화되는 것도 이런 상황의 특징이다. 만약 지금 자신의 조직이 권력 투쟁 중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몇 가지 현상을 확인해 보면 된다,
- 비밀스러운 모임에 대한 소문이 떠도는가?
- 조직 개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조직 개편 소식이 들리는가?
- 특정 집단이 소외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가?
만약 이런 현상이 모두 발생하고있으며 그로 인해 조직원들이 말조심을 하고 있음이 뚜렷이 확인된다면 현재 조직은 권력 투쟁 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힘없는 조직원들의 취할 수 있는 행동 양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기존 권력 그룹에 포함되어 있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은 적극적인 권력 투쟁에 대한 개입이다. 만약 그 그룹이 권력 투쟁에서 낙오할 경우 함께 낙오할 수 밖에 없다면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므로, 즉 자신의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투쟁을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하거나 굉장한 스트레스로 받아 들이는 경우엔 소극적인 개입의 형태로 무응답(no answer)을 선택하기도 한다.
둘째, 새로운 권력에 협력하는 경우. 기존 권력이 자신에게 완전히 의미를 상실했으며 새로운 권력의 출현이 필요할 경우, 기존 세력으로부터 이탈하여 새로운 세력으로 편입하려 한다. 그러나 대부분 새로운 세력이 권력을 얻는데 실패하거나 실패할 조짐이 보인다면 즉시 원래의 권력으로 복귀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특별히 권력에 속해 있지 않은 경우. 권력간 투쟁에 개입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단지 직급이나 직책, 직무, 소속 조직의 의지를 따르게 된다. 특별한 제안을 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반대를 할 수도 없다. 우리들 대부분이 이러하다.
이 정치적 표현들을 현실적인 단어로 치환하여 예를 들면 이렇다.
회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기존 매니저가 있음에도 새로운 매니저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 왔다. 그러나 회사의 경영진은 기존 매니저가 자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새로운 매니저는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공식적인 발표를 했다. 몇 주 후 기존 매니저는 사표를 내고 조직을 떠났고 새로운 매니저가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새로운 매니저는 첫 번째 주에 프로젝트 팀의 일부를 다른 부서로 발령했고, 두 번째 주에는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을 해고하거나 다른 부서로 이동시켰다. 그 즉시 새로운 프로젝트 인원이 고용되었고 프로젝트는 과거보다 훨씬 강도 높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이런 일은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일을 단순한 사건이나 업무상 조정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단순한 사건이나 업무상 조정이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행위이며 또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격렬한투쟁이다. 다만 우리들 대부분이 그것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또한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두려움의 실체
많은 사람들이 회사와 직장을 투쟁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삶과 생활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유토피아적 환상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다. 이 괴리는 직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아침에 눈을 떠 직장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골치 아픈 업무’, ‘반복되는 생활’, ‘괴롭히는 상사’, ‘낮은 급여’, ‘과중한 업무로 인한 피로’ 등을 대답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질문을 달리하여 “직장이 두려운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왜냐면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또 다른 의미 즉, ‘비겁함’, ‘거짓말’, ‘패배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직장이 두려운가?”라는 질문을 누군가에게 하는 것은 그 사람 개인을 모욕하는 것과 똑 같은 효과를 갖게 된다. 때문에 사람들은 직장을 두려워한다고 대답하는 대신 ‘지겹다’거나 ‘의미가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만약 직장에 마키아벨리즘이 존재하며 권력 투쟁이 존재하며 또한 그것에서 자신이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이제 ‘두려움’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인식에 의해 그 두려움의 실질적 존재와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유태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 중 한 평범한 할아버지에 대한 추적을 다룬 영화가 있다. 어떤 동네의 평범하고 선량한 한 할아버지가 알고 보니 나찌의 선봉장으로 수 많은 유태인을 학살한 전범임을 밝혀가는 영화다. 이 영화는 결코 공포 영화가 아니지만 그 사실을 깨달아 가며 사람들은 마치 괴물이 바로 옆에 살았다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회사나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 – 정글의 법칙에 따른 현상을 예의 주시하는 것은 그 할아버지의 정체를 밝히는 것과 같다. 영화의 장면 장면에서 “이제 그만해요. 수십 년이 지난 마당에 그걸 밝혀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라고 만류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나름의 평화를 이야기하며 오래된 진실을 밝힐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우리가 직장이나 회사에서 굳이 두려움을 찾아야 할 이유는 없다. 조직이 자신을 하나의 실존적 인간이 아니라 구성 요소로 바라보든, 누군가 피 튀기는 권력 투쟁을 하고 있든 모른 척하면 그만이다. 그것 또한 선택이다. 모두가 싸워야 할 이유도 없고 또한 모두가 승리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런 경우엔 모르는 게 행복의 기초가 될 수도 있다. 두려움을 모르는 자가 아니라 두려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가 행복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자들은 누군가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심지어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권력 투쟁으로 인한 두려움을 이해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직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권력 투쟁과 그로 인한 두려움에 대해 이해할 필요는 있다. 두려움을 이해함으로써 반드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이 왜 변화하고 있는 지 알 수는 있다. 변해 버린 자신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어리석은 중년이 되지는 않을 수 있다. 만약 이 두려움을 이해를 하기로 작정을 했다면 가능하면 자세히,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왜냐면 그런 이해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직장 생활의 무료함을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나는 비전이 없는 직장이 싫은 게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나는 리더십 없는 직장 상사가 싫은 게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이야기하는 직장과 회사에 대한 불만과 스트레스와 염증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을 수 있다. 두려움의 정체를 아는 것은 인생의 탕진을 막는다. 비록 두려움의 정체를 알고 난 후에도 그것을 이길 수 없거나 더욱 두려워하게 되더라도 과거보다는 낫다. 마약 모르고 두려워하는 것과 알고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왜냐면 그것은 우리가 알아야 하는 오피스 정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정체를 모르는 자는 잡아 먹히는 이유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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