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경험을 내 뇌에 심는다고?
영화 `소스코드`처럼 기억ㆍ경험 이식기술 국내외서 연구중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미군 대령 제이크 질렌할에게 미션이 주어진다. 추가 테러를 예고한 보스턴행 열차 폭파범을 찾아내라는 것. 사령부에서 컴퓨터로 대령의 뇌에 몇 가지 코드를 입력하자, 그의 의식이 사고 직전 열차에 탑승했던 사망자의 몸으로 들어간다. 그는 사망자의 몸을 빌려 사고 직전 8분의 시간을 몇 번이고 재생한 끝에 결국 범인을 알아낸다.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소스코드`에는 과학일까 가상일까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 영화의 메이킹 필름에서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웨일의 말을 빌려 "뇌를 완벽하게 연구하면 한 사람의 의식을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언뜻 허무맹랑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뇌에 특정 정보를 입력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과학자들은 "뇌의 신경세포를 정확하게 자극할 수 있다면 사람의 느낌이나 경험, 기억 등을 이식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희미해진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리거나 친구가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감격을 내가 실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 뇌의 구조를 영상으로 찍고, 뇌의 각 부분의 역할을 파악하는 뇌 읽기(Brain Reading)에서 뇌에 필요한 정보를 골라 입력하는 뇌 쓰기(Brain Writing)로 뇌 연구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브레인 라이팅`의 핵심은 원하는 신경세포만을 정확하게 자극할 수 있는 기술이다. 뇌에 전기봉을 꽂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자극하려는 표적 세포 주변의 세포까지 모두 자극하기 쉽다. 미국 스탠퍼드대 칼 다이서로스(Karl Deisseroth) 연구팀은 2005년 광유전학 기술(Optogenetics)을 밝혀내 뇌 연구의 새 장을 열었다. 광유전학 기술에서는 전기 대신 빛으로 세포의 활성을 조절한다. 빛에 민감한 단백질인 채널로돕신2 유전자를 신경세포에 끼워넣고 세포에 푸른 빛의 파장을 비추면 단백질 안에 채널이 열린다. 이온이 다니는 통로인 채널이 열리면서 양이온이 쏟아지고, 세포가 흥분하게 된다.
뇌가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신경세포들이 뇌의 전압을 조절하기 때문인데, 빛을 비춰 인위적으로 정보를 처리한 결과를 내는 셈이다. 형광펜으로 색을 칠해 중요한 내용을 구분하듯 광유전자로 표시(tagging)를 해가면서 원하는 세포를 분별할 수 있다.
KAIST 김대식 교수팀은 5월부터 KAIST 브랜드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3년간 광유전학 기술을 사용해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손상된 세포에 자극을 가해 파킨슨병이나 우울증 등 신경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표다.
김 교수는 "같은 기술을 장기적으로 연구하면 다른 뇌에 기억을 심어주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뇌는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분류하고 해석해 기억으로 저장하지만, 신경세포를 움직이는 코드를 직접 심어주면 눈, 코, 입 등을 통하지 않아도 뇌는 `경험`으로 인식한다는 설명이다.
장기적으로 인간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이식하거나 복사하기 위해서는 신경세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보를 가공하는 광유전자적인 신호처리능력이 더 개발돼야 한다.
김 교수는 "광유전자적으로 자극을 주는 것이 단순히 소리를 질러 사람이 듣게 하는 정도라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통역`하는 것은 고차원적인 신호처리 기술"이라며 "브레인 라이팅 분야가 더 연구되면 20여 년 후에는 기억의 선택적 강조나 입력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유진 기자]
* 출처 : 매일경제, 2011.05.18 17: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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