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에도 ‘미실’ 있다
암 침팬지, 수컷들 역학관계 이용 13년 권좌
배신감 느낀 수컷 등돌려 최근 ‘정권교체’ 이뤄져
침팬지 9마리가 모여 사는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동물원 유인원관인 ‘몽키밸리’에서는 최근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13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난 침팬지는 한국 태생인 갑순이(24·암컷). 1997년부터 올해까지 우두머리 자리를 지켜온 명실상부 1인자였다.
침팬지 무리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컷들이 우두머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갑순이는 싸움 기술뿐 아니라 서열이 낮은 수컷 침팬지들과의 은밀한 ‘밀고 당기기’ 관계를 활용해 권력을 손에 쥐었다. 주변 수컷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2인자나 3인자가 함부로 자기 자리를 노릴 수 없도록 인간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동맹과 암투의 정치를 해온 것. 열일곱 살 단디와 열한 살 루디 등 수컷 동반자들이 든든하게 뒤를 봐준 덕에 갑순이는 나이가 든 뒤에도 뒷전으로 물러나지 않고 지배력을 유지했다. 이른바 침팬지계의 ‘미실’인 셈이다.
2007년 에버랜드 동물원은 근친 교배의 위험을 막기 위해 일본에서 새로 침팬지 4마리를 들여왔다. 함께 살던 단디와 루디 등 한국 침팬지 3마리가 일본 침팬지들과의 갈등 끝에 방을 뺄 때도 갑순이의 세력은 여전했다. 갑순이는 특유의 ‘양다리 걸치기’ 비법으로 일본 침팬지들도 다스렸다. 수컷 침팬지인 에버(12)와 포리(8)를 적절히 활용해 다른 암컷들을 견제했던 것.
하지만 수컷들과의 복잡한 관계는 결과적으로 갑순이 스스로 권좌에서 밀려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갑순이는 최근 성적으로 성숙한 포리와 짝짓기를 했다. 그러자 처음부터 일편단심으로 갑순이 곁을 지켜 온 에버는 배신감을 느끼고 갑순이에게서 등을 돌렸다. 포리와 갑순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지자 불안해진 에버는 62.5kg의 우람한 체격과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다른 암컷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처음으로 갑순이에게도 시비를 걸고 과시 행동을 하는 장면이 사육사들에게 목격됐다.
바람둥이인 데다 아직 어린 포리만 믿기엔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갑순이는 에버에게 대항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에버가 더는 갑순이를 지켜주지 않자 그동안 참고 있던 암컷들도 힘을 합쳐 갑순이를 공격했다. 이제 에버가 에버랜드 침팬지들의 우두머리가 됐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에버의 장기 집권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젊고 건강한 포리가 갑순이 또는 다른 암컷과 손을 잡고 도전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선 침팬지들이 서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정치 투쟁을 벌인다고 해석한다. 세계적 영장류 학자인 프란스 더발은 1982년 침팬지들을 관찰해 쓴 저서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침팬지들이 맺는 사회적 관계와 그 속의 정치적 움직임 등을 소개한 바 있다. 침팬지들도 인간 못지않은 정치적 속성과 개성을 바탕으로 피 튀기는 정쟁(政爭)을 벌인다는 것. 몽키밸리의 강철원 사육사는 “사자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맹수들 사이에도 서열은 정해지지만 이들은 거의 육체적 힘에만 의존한다”며 “반면 침팬지들은 ‘관계(정치)’에 집착하고 이를 통해 힘을 행사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출처 : 동아일보, 2009-11-17 03:00
'BuzzWeb > 인생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즐겁게 오래 살기(10계명) (0) | 2009.12.01 |
---|---|
현대사회 또 하나의 '스펙' 軍隊人脈 (0) | 2009.11.26 |
김성근 감독에게서 배우는 위기 극복법 (0) | 2009.11.17 |
'직장어'를 배워보자~!! (0) | 2009.11.17 |
'몽정기' 정초신 감독 '영화 황산벌 포기해 망했다?' (0) | 2009.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