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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의 선택이 남은 인생을 좌우

BUZZWeb 2009. 1. 13. 15:51

[특집]전직의 선택이 남은 인생을 좌우

 
 
30·40·50대 3인의 성공사례… 공통점은 능력보다 인간관계 돈독 


 

 한 재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와 전직자가 이력서를 쓰고 있다. <김대진 기자> 

 

전직에 대한 고민은 직장인 모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자의든 타의든 전직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 전직은 잘 선택하면 인생이 즐겁지만, 잘못 선택하면 평생 후회 속에 산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처럼 전직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전직 성공 주인공의 공통점은 인간관계가 좋다는 점이다. 실력과 능력보다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 여실히 증명된다. 30대부터 40, 50대의 전직 성공사례를 각색해 정리했다. 성공스토리 주인공의 요구로 실명 대신 가명으로 처리했다. 〈편집자 주〉

 

 

30대 전직 성공 스토리
이상철/공기업에서 민간 중견기업으로 전직

 

국내 전선 전문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상철씨(32)는 3개월 전만 해도 남모를 속앓이로 마음고생이 컸다. 공기업에서 2년3개월 동안 전기·시설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전직을 고려했지만 그를 원하는 기업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현장보다 해외영업 쪽에 관심이 컸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분야는 짧은 현장 경력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신입직원으로 입사하기에는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억울했다. 물론 첫 직장인 한 중소업체에서 6개월 간 해외영업을 담당했지만 그 경력을 내세우기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외국계 대기업과 국내 중견기업을 노크했다. 소극적이던 종전의 전직 전략에서 이번에는 전직 전문가와 상담 후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전직에 임했다. 자신의 능력을 재평가받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등을 구분해 적합한기업을 찾았다.

그의 노력은 최근 결실을 맺었다. 한 외국계 대기업과 국내 중견기업으로부터 그의 능력을 사고 싶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그는 현재 국내 기업 해외영업팀에 배치돼 중남미지역을 맡고 있다. 그가 외국계 대기업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미래에 대한 자신의 꿈 때문이다. 이씨는 “당장은 브랜드가 알려진 외국계기업이 좋겠지만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젊은이로서 성장 가능성이 큰 중견기업을 선택했다”면서 “요즘 젊은이는 현실보다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취업한 이 중견기업은 3년 후 물량까지 확보하는 등 건실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40대 전직 성공 스토리
박상문/외판원에서 중소 유통업체 관리부장으로 전직

 

한 중견 유통업체에 최근 취업한 박상문씨(43)는 2개월 전만 해도 이력서 대신 ‘유서’를 안주머니에 넣고 살았다. 박봉으로 결혼도 못한 데다 앞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홀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됐다. 퇴직할 수가 없었다. 병원비며 홀어머니를 돌봐주는 도우미 비용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더 나은 직장으로 전직도 고려했지만 거의 불가능했다. 가정형편으로 전문대학을 1년 다니다 중퇴한 데다 건강도 좋지 않아 전직은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정수기 외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그에게 고학력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어 보였다. 물론 그를 원하는 일자리도 많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천부적인 성실성과 문서관리와 경리, 세무분야를 틈틈이 익혀온 것이었다. 경리 여직원에게 저녁을 사주고 개인교습을 받는 등 나름대로 향후 진로에 대비했던 것. 이를 위해 20여 년 연하의 여직원에게 존칭은 물론 깍듯이 사부(?) 대접을 해가며 실무업무에 총력을 기울였다. 전문대학(무역학)에서 1년 간 배운 것이 새록새록 떠올라 비교적 빠르게 실무와 이론을 익혔다. 그가 이렇게 불철주야 노력한 것은 현실에 안주할 경우 영원히 외판원으로 머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희망이 찾아왔다. 평소 거래처 관계자가 그의 성실성과 꼼꼼한 성격을 눈여겨보고 친척에게 그를 추천한 것이다. 거래처 친척은 문구류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고 관리부장이 최근 전직하면서 빈 자리가 생겨 그를 찾은 것이다.


그는 발품을 파는 고달픈 나날을 보냈던 기억을 무기로 지금은 그 누구보다 능력 있는 관리부장이 될 생각이다. 내년에는 중도에 포기한 대학공부도 이어갈 생각이다.

 

 

50대 전직 성공인
김상도/국내 섬유업체 부장에서 중국 칭다오 섬유업체 공장장으로 전직

 

중국 칭다오의 한 섬유업체에 최근 공장장으로 취임한 김상도씨(55)는 지난 여름만 생각하면 지금도 앞이 캄캄하다. 30여 년 간 다니던 섬유업체가 지난 8월 부도로 문을 닫으면서 졸지에 실직자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언론을 통해 접했을 뿐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노숙자가 자기 자신도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더욱이 평생을 바친 직장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그가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문제는 평생 배운 것이라고는 섬유업체에서 익힌 니트 관련 기술뿐인 데다 대부분 동종업체가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해 국내에서는 마땅히 취업할 회사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생소한 분야로 취업하기에도 막막했다. 나이가 많아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아파트 경비직에 지원하기도 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변두리 아파트의 경비직에 취직했지만 보수가 5인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월급 100여만 원도 채 안 되는 돈으로 대학에 다니는 딸 등 다섯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다”면서 “미리 실직 등에 대비했으면 그렇게까지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를 짓누른 것은 패배감이었다. 평소 ‘미스터 성실’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돌아온 것은 갑작스런 실직과 자괴감뿐이다. 고민 속에 하루하루를 지내던 그에게도 희망이 보였다. 중국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섬유회사 근무 시절 거래하던 중국측 섬유업체의 한 지인이 같이 일해 보자는 제의를 한 것이다.

 

그는 실직 후 전직컨설턴트의 조언으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 지인에게 취업문의를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중 한 업체에서 김씨의 능력과 성실함을 높이 산 것이다. 그는 연봉 60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며 현재 중국 섬유업체에서 공장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물론 평소 잘 닦아놓은 인적네트워크와 틈틈이 익힌 중국어 회화가 크게 빛을 발한 것이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 출처 : 2006 12/12   뉴스메이커 7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