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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짱, 글쓰기-보고서… 논문… 칼럼… 글 잘 써야 잘나간다

BUZZWeb 2009. 1. 11. 22:34

보고서… 논문… 칼럼… 글 잘 써야 잘나간다

말대신 전자결재 보편화… 전문직은 책 쓰기도 유행… 자신을 인정받는 기회로

 

# 1.유학원 직원 권모(26)씨는 얼마 전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발개진다. 외국의 파트너 유학원에 고마움을 표하는 편지를 썼는데 이를 읽어본 상사가 “이것도 글이라고 썼느냐”며 동료들 앞에서 핀잔을 주었기 때문이다. 감사의 편지라도 격식이 있고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빠뜨렸다는 것이다.

 

권씨는 “그러면 어디 당신이 한번 해보라”라고 치받고 싶었지만, 딱히 잘 한 것도 없어 꾹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대신 그날로 서점으로 달려가 글 쓰기 요령을 담은 책을 집어 들었다. 권씨는 요즘 그 책을 읽으며 틈틈이 이렇게, 저렇게 글을 써보고 있다.

#2.와인 수입업자 박모(39)씨. 회사 규모가 작아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데 고객에게 뿌릴 광고문안 작성이 가장 힘들다. “A4 크기의 광고지에 멋진 문구로 우리 제품의 장점을 충분히 전해야 하는데 글 쓰기가 어렵다”며 “철자도 헷갈리고, 문법도 몰라 막막할 때가 많다”고 한다.

박씨는 다행히 가까운 곳에 필력 있는 선배가 살고 있어 틈날 때마다 달려가 도움을 받고 글 쓰기 요령을 배운다. 그 선배가 며칠 전 책 한 권을 던져 주었다. 책에는 ‘글 쓰기의 전략’이라는제목이 붙어 있었다.

글쓰기 바람이 불고 있다. 삽시간에 번지는 맹렬한 기세는 아니더라도, 그 지겹고 어려운 글 쓰기를 잘 해보겠다는 바람이 슬슬 불고 있다. 작법서(作法書)를 읽고, 동아리를 만들고, 강의를 듣는다. 학창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글 쓰기다.

이유를 따지자면,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 말로써 생각과 의견을 주고 받는 대신, 글을 통한 간접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청와대가 전자결재제도를 도입했듯, 기업체 등에도 전자결재가 보편화하고 있다. 이전에는 문서를 들고 상사를 찾아가 일일이 말로 보충ㆍ배경 설명을 했기 때문에 보고서가 충실하지 않아도 보완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이든, 문서든 글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면(對面)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말과 마찬가지로, 상황 설명은 물론 자신의 견해와 주장, 심지어 감정까지도 글에 담아야 한다. 게다가 한번 작성된 글은, 내용이 조금 잘못돼도 주워 담기가 어렵다. 말과 달리 한번 쓰면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책임이 뒤따른다. 뭐라 발뺌할 수도 없다.

글 쓰기의 중요성이 어디보다 큰 곳은 공직사회다. 업무의 상당수가 문서 작업으로 이뤄지는 만큼 공무원들의 고민도 깊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전문가를 초빙, 글 쓰기 교육을 한 데 이어 ‘보고서 잘 쓰기 동아리’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격주로 모여 보고서 작성 등 업무와 관련한 글 쓰기 연습을 하고 있다.

기업도 글 쓰기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SDS는 지난해부터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장 짜리 보고서 만들기’ ‘논리적인 스토리가 있는 보고서 작성’ 등의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 띄어쓰기 등 기본어법을 가르치고 불필요한 글 늘리기를 지양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업무의 핵심을 글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면 어느 기업에서든 능력 있는 직원으로 인정 받는다”고 말했다.

일반인보다 공부를 더 했다는 교수, 연구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전 을지대학병원 진단검사학과 임춘화(39) 교수도 그 가운데 한명. 연구계획서는 물론 장비 의견서를 수시로 제출해야 하는데, 남다른 구상도 있고 의견도 있지만 글로 옮길 때는 뜻만큼 되지 않았다. 임 교수는 고민 끝에 최근 글 쓰기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다.

전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가 마련한 ‘과학 기술인을 위한 직장 글쓰기’ 과정에 참가한 것. 글 쓰기 전문가인 임재춘 영남대 객원교수가 강사로 나선, 우리나라 최초의 직장 글쓰기 과정이다. 기획서, 제안서, 에세이 쓰는 법 등이 3월 4, 11, 18일 3회에 걸쳐 진행됐다.

임 교수는 그때마다 대전 집에서 강의가 열리는 서울 이화여대까지 달려갔다. 거기에서 임 교수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성 과학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함께 자리한 15명의 여성 과학자들은 ▦쓰기 전에 미리 틀을 잡을 것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쓸 것 등 기본 원칙을 익혔다. 한번에 여섯 시간, 3차례 열린 강좌가 아쉬운 듯, 이들은 매월 한번씩 만나 책도 읽고 글도 함께 쓰기로 의기투합했다.

의사, 한의사, 투자 전문가 등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신문이나 잡지에 칼럼을 쓰고 단행본 한 권 내는 게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유행이다. 자신의 지식을 일반인과 공유하자는 취지지만, 글 못 쓰면 전문지식을 의심받는 분위기가 엄존한다. 이 세계에서도 글 쓰기가 필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최근 ‘내 몸 안의 독, 생활 습관으로 해독하기’를 낸 한의사 박경호(40)씨는 “글 쓰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환자에게 병환의 상태와 치료법 등을 말로 설명하면 환자도 쉽게 이해한다. 하지만 책은, 상대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단어 하나, 표현 하나도 조심스럽다. 박씨는 “국어사전을 펴고, 인터넷을 뒤지며 정확하고 어법에 맞으면서도 독자에게 어필하는 기발한 표현을 찾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글이 힘이 되고 돈이 되는 세상, 글로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 그럴수록 글 쓰기 바람은 더 거세게 불 것이다.

  

 

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늘역을 인정받는 시대. 그래서 좋은 글을 향한 욕구가 더 강렬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31일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 백화점 본점 옥상공원에서 직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함께 책을 읽으며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홍수기자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입력시간 : 2006/03/31 19:21
수정시간 : 2006/03/31 19:38

 

* 출처 : 한국일보, 2006/03/3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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