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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건, 자연의 오류 아닌 다양한 삶의 전략

BUZZWeb 2013. 12. 17. 21:47

늙는다는 건, 자연의 오류 아닌 다양한 삶의 전략
 

 

‘위즈덤’이라는 이름을 얻은 예순두살의 암컷 라이산 앨버트로스가 ‘노익장’을 과시하듯 새끼를 품고 있다. 야생동물의 세계에선 노화 현상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야생의 노화는 최근 학계의 관심사 중 하나가 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이언스 온] 야생동물 노화의 세계

올해 2월 태평양 어느 야생보호구역 섬에 사는 철새 라이산 앨버트로스(신천옹)의 번식지에서 새끼 한 마리가 알을 깨고 태어났다. 다른 앨버트로스 새끼와 별다를 게 없는 이 작은 생명의 탄생은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위즈덤’이라는 이름의 유명한 엄마를 두었기 때문이다. 위즈덤은 올해 예순두살로 지금까지 알려진 새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라이산 앨버트로스의 평균 수명이 12~40년 정도로 추정된다 하니, 위즈덤은 인간으로 치면 130년 정도를 살고도 출산한 셈이다.


그런데 야생동물도 나이가 들면 노화 현상을 겪을까?


많은 이들이 동물도 늙을 테니 노화는 당연하다고 답하겠지만, 사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과학자들은 노화가 인간만이 겪는 생물학적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축이나 애완동물 또는 동물원 동물처럼 인간이 선택적으로 보호하는 개체들만이 예외적으로 노화를 경험할 뿐, 야생에선 노화가 나타나기 전에 모두 죽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개체 표지를 한 야생동물의 생활사를 오래 조사한 최근 연구를 종합하면, 노화가 인간이나 동물원 동물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연선택 그물망’ 피한 유전자의 진화


탄생, 성장, 번식과 마찬가지로 노화도 동물의 생활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면 다른 생활사의 특성과 마찬가지로 노화도 유전되며 자연의 선택을 받아 진화했을까?


독자 중에는 “에이, 동물에게 이득 될 게 없는 노화가 어떻게 자연의 선택을 받겠느냐”며 고개를 젓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쌓이는 지혜, 지식, 경험처럼 좋은 것도 많지만 생물학적 노화를 생각하면 부정적인 면이 먼저 떠오르게 마련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암이나 치매는 나이가 들면서 발생률이 높아지는 질병이다.


생물학적 이득을 지닌 형질이 자연의 선택을 받아 진화하고 그렇지 못한 나쁜 형질은 사라진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이 잘 이해하지만, 이런 식의 자연선택을 피해서 나쁜 형질이 축적되기도 한다는 점은 간과하기 쉽다.


수많은 유전자 중에는 성장기에 발현하는 유전자가 있는가 하면 노년기에 발현하는 유전자도 있다. 성장기나 번식기에 발현하는 유전자에서 생물학적 기능에 매우 나쁜 영향을 주는 돌연변이가 생기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돌연변이 유전자가 발현해 개체는 정상 번식을 하지 못하거나 번식 전에 죽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이 돌연변이 유전자는 다음 세대에 전해질 수 없으므로 개체군의 유전자 풀에서 걸러진다.


그런데 노화의 원인을 나이가 들어서야 발현하는 돌연변이 유전자의 축적에서 찾는 가설에 따르면, 진화에는 “자연선택의 그늘”이 존재한다. 성장·번식기에 발현하는 유전자의 나쁜 돌연변이는 선택되지 않고 걸러지는 데 반해, 고연령대에 발현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는 자연선택의 촘촘한 그물망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체들이 번식기에 이런 유전자를 자손에게 이미 전달한 이후에 나이가 들어서야 나쁜 돌연변이가 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돌연변이들이 개체군에 축적돼 나이가 들어 발병하는 암 같은 유전성 질병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연골어류가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오랜 믿음과 달리 백상아리도 종양에 시달린다는 증거자료가 발표되기도 했다. 어류질병저널(JFD) 제공
 


“야생세계선 늙기 전 모두 죽는다”


과학계의 오랜 통설이 무너졌다. 노화 유전자는 어떻게 전해질까?  때론 나이 들어야 형질 드러내고 때론 젊을 때와 다르게 발현하고 번식에 에너지 쏟다 늙어버린다. 동물들의 다양한 노화 방식 안에 성장·번식 전 과정이 함축돼 있다.

 

젊을 땐 유익, 늙어선 노화촉진도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길항적 다면발현’ 유전자에 의해 노화가 진화한다는 가설도 있다. 한 유전자가 여러 형질의 발현에 작용하는 것을 ‘다면발현’이라 하며, 같은 유전자가 어떤 형질엔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다른 형질엔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성격을 ‘길항적’이라 말한다.

만일 자손을 생산하는 시기에 발현해 개체에 좋은 영향을 주지만 나이가 들어선 나쁜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확산될 것이다.

길항적 다면발현 유전자에 의해 노화가 진화한다는 이론을 실제 연구로 증명한 사례는 많다. 예를 들어, 2006년 프랑스 샤르망티에 박사 등 연구팀이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회보>(PNAS)에 발표한 연구를 보면, 야생 혹고니는 꽤 장수하는 종이어서 스무살까지 살아남아 번식하는 개체도 있으며, 개체별로 다르긴 하지만 오래 사는 개체들 대부분은 노화를 경험한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 혹고니가 처음 번식하는 나이와 마지막 번식하는 나이를 살펴봤더니, 이 두 가지 생활사의 특성은 유전적으로 연관돼 있었다고 한다. 같은 다면발현 유전자가 성숙기엔 첫 번식의 나이를 조절하고, 생의 후반부엔 번식을 마감하고 사망하는 시기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일찍 번식하도록 진화하면 세대 간격을 좁혀서 좀 더 빠르게 다음 세대로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겠지만, 그럴수록 노화가 빨리 진행되고 수명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즉, 생의 초기에는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나중에는 생물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다면발현 유전자에 의해 노화가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정된 에너지, 자손에 쓰거나 자신에 쓰거나


노화 진화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엔 세포 노화와 관련한 이론도 있다. 노화는 동물 개체가 살아가는 동안 체세포 손상이 축적되면서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동물이 체세포를 유지하거나 번식하는 데 소모하는 에너지는 한정돼 있다.


만약 동물이 살아가는 동안에 체세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에만 한정된 에너지의 대부분을 투자하면 나이가 들어 노화는 늦출 수 있을지 모르나 다음 세대로 유전자를 물려주기는 힘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화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자손을 남기는 동물이 개체군에서 많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체세포 노화 이론을 증명하는 한 예로는, 스페인 카란사 박사 연구팀이 2004년 <네이처>에 발표한 야생 붉은사슴 연구를 들 수 있다.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붉은사슴의 이빨은 성장기에 다 자란 뒤 살아가는 동안 점차 마모된다. 물론 살아가면서 영양분을 보충해 이빨이 닳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야생에서 살아가는 수컷과 암컷의 이빨 크기를 비교했더니, 짝짓기를 위해 수컷들 사이에서 혹독한 경쟁을 견뎌낸 수컷들의 이빨이 기대치보다 훨씬 더 많이 마모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슴은 뿔이 크게 자라는 한창나이에 될수록 많은 암컷과 짝을 지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때 암컷의 환심을 사는 데 필요한 뿔을 키우고 다른 수컷과 싸워 짝짓기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런 전략을 위해서 나이가 들어서도 유지될 수 있는 튼튼한 이빨을 만드는 데 소비할 에너지는 포기한 것이다.


다음 세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포기한 것은 튼튼한 이빨만이 아닐 것이다. 결국, 다른 것들을 포기한 결과는 암컷보다 빠른 노화와 짧은 수명으로 나타났다. 힘세고 멋진 뿔을 가진 수컷을 선호하는 암컷의 선택이 자연선택의 힘으로 작용해 수사슴들이 빨리 늙도록 한 셈이다.


노화는 자연의 오류가 아니라 탄생에서 죽음까지 생활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살아가는 전략이다. 동물이 성장하고 번식하며 살아낸 전 과정이 늙는 모습과 방식에 함축돼 있으므로 더 흥미롭다. 비교적 최근에야 야생에 나타나는 노화에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노화는 과학자들에게 상상력과 탐구심을 자극하는 무궁무진한 신세계이기도 하다.

 


김신연 스페인 비고대학 생물학과 연구교수


※사이언스온 웹진에 실린 글을 필자가 줄이고 다듬어 다시 썼습니다.

 

 

* 출처 : 한겨레, 2013.12.1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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