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디지털 시대, 나를 잊어주세요
by 정보라 | 2011. 12. 25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 공유의 시대에서 ‘나’는 잊혀질 수 있을까. 나의 사소한 행적까지 수집하고 저장하는 인터넷 서비스, 그리고 인터넷 서비스에 정보를 요구하는 수사당국과 정부, 사업자는 나의 과거를 잊어줄까.
8억명이 쓰는 SNS 페이스북의 대표 마크 주커버그는 프라이버시는 없다고 말했다. 웹에 올린 이상 모든 건 공개되니 알려지기 원하질 않는 생각이라면 온라인에 공개하지 말란 이야기다. ‘이건 나의 생각이다’라고 쓴 것만 수집되고 저장되는 건 아니다. 요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 대한 정보가 서버 어딘가에 저장되는 시대다.
올해 몇 차례 드러난 서버 해킹 사태만 해도 그렇다. 나는 공개할 목적으로 내 정보를 농협, SK커뮤니케이션즈, 넥슨, 그래텍 서버에 올리지 않았다. 내 정보를 입력해야 회원가입을 할 수 있다기에 적었을 뿐이다. 낱낱이 저장해 유출될 것으로 생각하며 주민번호를 적고, 주민번호에 기반한 아이핀인증, 휴대폰 인증, 신용카드 인증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잊혀질 권리’를 지은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는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 메모리 때문에 한 사람이 정보에 대해 갖고 있던 통제력의 중요한 부분이 사라져 버리고, 네트워크에 접근이 가능한 수백만명의 사람에게 재분배됐다.”
예전엔 내 정보를 적은 종이 한 장 파쇄하면 그만이었다. 이제는 내 정보를 적은 서버, 백업 서버, 그리고 서버가 연결된 네트워크를 무력화해야 한다. 문제는 사실 각 곳에 흩어진 서버가 나에 대한 어떠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 정보를 누가 가졌고, 누구에게 주었고, 누가 보고 있고, 앞으로 누가 어떻게 쓸 것인지 내가 어떻게 정확히 알 수 있겠나.
페이스북만 해도 그렇다. 내가 ‘상태’ 메시지에 쓴 글이 페이스북의 검색API를 활용해 누가 수집할지 나는 모른다. 페이스북이 내 데이터를 제공할 때마다 물어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가져가는 쪽에서 ‘활용해도 좋니?’라고 묻지도 않는다. 내 블로그에 페이스북의 ‘좋아요’ 단추를 붙였지만, 페이스북이 이 단추를 활용해 내 웹페이지에서 얼마만큼의 정보를 긁어가는지 알기 어렵다. 페이스북은 ‘좋아요’ 단추 플러그인을 적용하는 법은 쉽게 알려주지만, 그 단추를 가지고 페이스북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세계에서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하진 않는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공유하고 저장하는 게 쉬운 일이 되어간다. 정보를 찾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페이스북, 구글, 네이버 등은 사진을 저장할 때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해 내 친구를 쉽게 찾아준다. 친구들은 이들 서비스에서 ‘정보라’라고 검색했을 때 내 얼굴이 나온 사진을 쉽게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해 내 계정과 연동하는 걸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사진 설명글에 혹은 태그에 내 이름을 쓰면 그만이다.
만약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떠올린다면 막연한 두려움은 없을 것이다. 들릴 듯 말 듯 내뱉은 내 생각이 수십 년이 지나고 사상 검증에 쓰이는 일이 없다면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온라인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거다. 아날로그 사회는 종이에 쓴 정보는 그 위에 커피 한 번 쏟으면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잘 보관한다고 해도 어디다 뒀는지 잊으면 정보를 불러올 수도 없다. 온라인에 내 정보를 남기지 않으려면 나를 드러내지 않고 살면 된다. 전자상거래를 이용하지 않고, 어떠한 웹서비스에도 회원가입하지 않으면 된다.
쇤베르거는 정보를 기록, 저장, 검색하는 게 쉬워지면서 자기를 표현하는 행위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에 우리 아이들이 솔직하게 말한 내용이 나중에 그들의 미래 경력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만들어지는 학교 신문에 거리낌 없이 그대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
가수 박재범이 어린 시절 온라인에 올린 글귀 하나로 소속 팀과 회사에서 물러났다. ‘잊혀질 권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여기에서 문제는 삽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알았다는 데 있지 않다.
내가 직접 만들어낸 나에 대한 정보인데도 나는 잊었고 누군가는 불러와 봤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걸 본 사람은 그 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활용할 지 나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 ‘기억하기의 문제점’이 있다. 오프라인에서 내뱉은 말이었다면 몇 년이 지났는데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디지털 시대에서 잊힐 권리를 갖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보를 저장하는 기간, 강제적인 삭제를 요구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쇤베르거는 정보의 만료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지우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구글이 나의 검색 질의어를 영원히 저장하지는 말도록 하자는 것도 같은 취지이다.
이미 개인이 자기 정보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어렵게 된 마당에 정보 저장 만료일 설정은 설득력이 있다. 사회적으로 합의를 거치고 시행방법을 논의하는 게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 출처 : 블로터닷넷, 201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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