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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남자와 20대 처녀의 사랑, 어디한번 해보자

BUZZWeb 2011. 7. 3. 21:14

50대 남자와 20대 처녀의 사랑, 어디한번 해보자

 

【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근래 일본만화계에서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먼저 지난해 출간된 니시 케이코의 만화 ‘남자의 일생’을 살펴보자.

 

‘남자의 일생’은 전형적인 레이디스 코믹, 즉 20대 중반 이상 여성층을 위한 만화다. 30대에 접어든지 오래인 대기업 엘리트 도조노 츠구미가 할머니의 사망과 함께 도쿄를 떠나 시골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변화를 그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츠구미는 51세의 대학교수 카이에다 준을 만난다. 사망한 할머니의 ‘제자’라 말하는 그는 뻔뻔하게 츠구미가 살고 있는 할머니집의 별채에 묵게 되고, 그러면서 20세에 가까운 나이차를 지닌 커플이 탄생된다. 주변에서도 “너한텐 그 정도 나이차가 딱”이라 부추긴다.

 

그런데 이 만화는 그 전해인 2009년 출간된 야마시타 토모코의 ‘러브, 헤이트, 러브’와 닮은 구석이 많다. 역시 레이디스 코믹으로서, 발레밖에 모르던 28세 처녀 키와코가 어느 순간 발레에 대한 꿈을 접으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발레공연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긴 머리를 자르고 생애 첫 담배를 피우려던 순간, 그녀는 옆집에 사는 52세의 대학교수 누이하라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무려 24세 격차 커플의 사랑이 시작된다.

 

니시 케이코와 야마시타 토모코는 ‘그저 그런’ 레이디스 코믹 만화가들이 아니다. 탁월한 심리묘사와 시대의식을 반영, 매년 최고의 만화들을 치하하는 ‘이 만화가 대단하다!’ 리스트에도 계속 이름이 오르는 주목받는 작가들이다. 그런 이들이 서로 ‘비슷비슷한’ 소재, 즉 ‘직업전선에서 후퇴한 여성’이 ‘연령격차가 심한 남성’과 연애하는 얘기를 다룬 것이다.

 

돌이켜보면 역시 ‘이 만화가 대단하다!’ 리스트 단골손님인 오노 나츠메도 수년 전 레이디스 코믹 ‘리스토란테 파라디조’에서 비슷한 콘셉트를 설정한 바 있다. 배경이 일본이 아닌 이탈리아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신을 버리고 리스토란테(레스토랑) ‘카제타 델로루소’의 오너와 재혼한 엄마에 복수하기 위해 로마를 찾은 20대 처녀 니콜레타는, 그곳에서 ‘카제타 델로루소’의 50대 카메리에레(웨이터) 클라우디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면서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던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역시 ‘직업전선에 후퇴한 여성’이 ‘연령격차가 심한 남성’과 연애하는 얘기라는 점은 같다.

 

이밖에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해파리공주’ 등 여타 여성용 만화에서도 주연급이 아닌 조연급 캐릭터 정도로는 모두 ‘중장년 남성층’에 애정에 느끼는 ‘20대 처녀’의 모습이 종종 비친다. 여성은 별다른 직업이 없거나 직업전선에서 후퇴한 경우이고, 남성은 비교적 탄탄한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거나 최소한도 안정된 삶을 구가하고 있다는 설정이 대부분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단순히 니시 케이코, 야마시타 토모코, 오노 나츠메 등이 ‘아저씨 마니아’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상 현재 진행형인 사회현상을 담아낸 것에 불과하다. 이런 흐름을 가리켜 일본에선 ‘카레센(枯れ專)’이라고 칭한다. 액면 그대로는 초목이나 사람 등이 마르다, 시들다, 생기가 없어지다, 라는 의미지만, 대개 50~60대 장년남성층에 끌리는 20~30대 젊은 여성층을 뜻하는 단어다. 2004~5년 즈음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단어로, 이미 2008년에는 ‘한물간 아저씨~카레센이라 부르지 마’라는 제목의 TV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다. 앞선 ‘리스토란테 파라디조’도 TV애니메이션화된 바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20~30대 젊은 여성층은 왜 50~60대 장년남성층에 끌리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해 산케이신문 2008년 2월1일자 편집장 칼럼은 한 젊은 여성과의 대화내용을 전하며 “실제로 그녀의 주위에는 30세의 연령차도 개의치 않는 카레센이 3명이나 있다고 한다. 모두 미인으로,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풍족한 환경, 자신의 가치관에 자신이 있어 혼자서 벽을 쌓고 사는 타입이란다. “카레센 여성은 프라이드가 높기에 불륜은 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면서 “그렇다면 상대는 잡지 ‘레온’ 같은 데 등장하는, 세련되고 조금 날라리 같은 아버지상이냐고 묻자, “아녜요. 카레센이 좋아하는 남성은 정말로 원숙한 타입입니다. 젊을 때 자신의 세계에 몰두해 독신으로 지냈던 것이 나이 들어서 빛을 발하게 되는 겁니다”라고 짚었다.

 

붐을 타고 출간된 서적 ‘카레센’에도 카레센이 좋아하는 장년층 남성의 매력은, 자연스럽게 박식하고, 돈이나 여자를 좇지 않으며,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적고 있다. 그야말로 원숙미의 극치다.

 

그렇다면 이 같은 남성상을 20~30대 여성층이 선호하게 된 까닭은 뭘까. 제이피뉴스 2009년 6월16일자 기사 ‘日 신랑 조건, ‘3고’에서 ‘3저’로 바뀐 이유’는 “20여년 전 일본이 버블 경제로 흥청망청일 당시에는 고(高)학력, 고(高)수입, 고(高)신장을 갖춘 3高가 일등 신랑감의 조건이었다.(중략) 이에 따라 당시 여성들도 ‘남자 하나 잘 만나면 팔자 핀다’는 것이 대세였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버블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돈 잘 버는 남편’만 믿고 살 수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 여성도 자신의 일을 가지는 것이 당연스럽게 여겨지고, 맞벌이가 가족형태의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3高에 코까지 높은 ‘남성 우월적’ 남성은 도태되었다.”면서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 늘어남에 따라 대두된 이상적인 남편상은 바로 3低. 低리스크, 低자세, 低의존이 바로 그 3低를 뜻한다. ‘아내의 일을 존중한다’라는 기본적인 마인드에 스스로 가사와 육아에 관심을 가지고 저자세로 여성을 위해 서비스해줄 수 있는 남성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또한 “이런 경향은 I25 주간지가 2009년 3월, 20~34세 여성 3359명에게 조사를 실시한 ‘결혼상대의 성격,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의 답변에서도 드러난다.”며 “3가지 사항까지 선택할 수 있었던 이 질문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것은 바로 ‘자상함’(82.6%), 이어 63.6%의 선택을 받은 것은 ‘큰 사람이 될 만한 재목’인가를 본다는 것. 이어서는 ‘듬직함(52.3%)’, ‘현실성(33.7%)’, ‘성실함(29.7%)’, ‘유머감각(23.3%)’, ‘모험심(3.1%)’. 기타(5.5%) 순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런 의식들을 공유하고 있으니, 너무 잘난 남자보다 이미 장년기에 접어들어 안정된 삶을 구가(앞선 만화의 두 남성이 ‘대학교수’임을 상기해보자)하는 남성-低리스크, 나이차가 많아 상대적으로 자신의 삶을 너그러이 봐주는 남성-低자세, 오랜 기간 독신생활을 고수한 탓에 집안일이나 갑가지 가정잡무를 능숙히 처리할 수 있는 남성-低의존이라는 코드가 한데 모여 ‘카레센 현상’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제 한국을 돌아보자. 한국은 물론 ‘카레센 현상’이 일어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독신주의가 애초부터 팽배했던 일본과 달리 한국의 선(先)세대 결혼율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따라서 50~60대 남성에 매력을 느꼈더라도 정상적인 미혼남녀 간 연애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 따지고 보면 일본의 ‘카레센 현상’이라는 것도 일종의 동경 심리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실체라고 보긴 어려운 측면이 많다는 얘기다. 그저 대중문화 속 혹은 사회분위기 속 호응도에 가깝다. 실제 일본 결혼 커플들 중 7세 이상 격차가 나는 커플은 불과 7%에 불과하다.

 

생각해볼 부분은 더 있다. 스포츠한국 6월28일자 기사 ‘‘외로운 일본 여성’ 20~40대 68% “애인 없다”’는 “오리콘이 28일 전한 바에 따르면 결혼정보 서비스 업체 오네트가 20~40대 미혼여성 900명을 상대로 실시한 ‘미혼여성 의식조사’에서 전체의 68.3%가 “교제하는 상대가 없다”고 응답했다. 이중 20대와 30대에선 1996년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높은 65%가 싱글로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20대 미혼여성의 81%, 30대의 69.3%는 ‘빨리’ 또는 ‘멀지 않은 시기에’ “결혼하고 싶다”고 밝혀 결혼 생각과 현실 사이에 큰 간극이 있는 사실을 드러냈다.”면서 “조사 참가 여성들은 연애관에 대해 “연인을 뒤쫓는 것보단 쫓아왔으면 좋겠다”(64.8%), “남자는 여성을 지켜주는 존재였으면 한다”(82.7%)고 밝혀 남성 주도의 연애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실제로 연애할 경우에는 미혼여성의 83.9%가 “속박 당하기 싫다”라고 응답하는 등 서로 간섭하지 않은 채 편안한 연인관계를 갖기를 희망했다”고 전했다.

 

결국 ‘나를 완전하게 사회로부터 보호해줬으면 좋겠다’는 심리와 ‘그래도 나를 속박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리가 상당히 이기적인 형태로 결합돼 일어난 게 바로 카레센이라는 허상의 동경 심리였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젊고 능력 있으면서도 내게 완벽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남성이란 기대하기 힘드니, 50~60대 남성이라는 미지의 대상을 설정해 망상을 부풀린 게 바로 ‘카레센 현상’이었다는 것.

 

이런 차원에서라면 한국도 한 번 이 같은 ‘카레센 커플’을 각종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 녹여볼 만하다. 현재 일본여성과 한국여성은 여성의 권위신장과 사회적 좌절이라는 기쁨과 아픔을 공유하며 비슷한 추이로 결혼풍속도 및 연애풍속도를 바꿔나가고 있다. 일본에서 연하남 열풍이 일면 한국에서도 곧 그런 반응이 나오고, 한국에서 까도남 열풍이 일면 일본도 머뭇거리다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이곤 한다. 카레센도 비슷한 공유 트렌드로 한국에서 역할할 가능성이 높다.

 

어찌됐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대중문화산업을 이끄는 힘은 20~40대 여성에게서 나온다. 이들이 만족해할 만한 콘텐츠, 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콘텐츠를 찾아내는 게 바로 대중문화산업의 목표다. 지금껏 한국여성이 어떤 판타지를 꿈꾸고 있는지 살펴봤다면, 이제 그 판타지에 대해 어떤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돌아볼 때다. 어쩌면 그 좌절감 속에서 태어난 게 ‘카레센 현상’일 수도 있다. 지속적인 관찰을 필요로 하는 대중심리의 한 단면이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 출처 : 뉴시스, 2011-07-03 08: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