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에게서 배우는 위기 극복법
김성근 감독에게서 배우는 위기 극복법
김성근 SK 감독은 한국시리즈 3연패를 이뤄내지 못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을, SK 선수단을 실패자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오히려 김성근 감독이, SK가 2등이었기 때문에 한국시리즈 챔피언 KIA가 더욱 빛났다. 그만큼 SK는 강하고 독했다.
SK-KIA의 한국시리즈를 두고 여러 말들이 많다. 일리 있는 의견도 있고, 감정적인 소모전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7전4승의 단기전에서 승자독식-패자전멸로 나뉘는 가혹한 시스템의 한계다. KIA는 우승 축배를 들어 마땅하다. 아울러 '역대 최강의 준우승팀'인 SK에게도 배울 점은 많다.
SK는 온갖 악재속에서도 시즌 막판 19연승을 달렸고, 포스트시즌에서도 놀라운 저력을 보였다. 김성근 감독의 위기 극복법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의 전략은 승패, 그리고 피아가 명확히 갈리는 야구에서 구현됐기에, 그리고 결국 준우승에 그쳤기에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삶을 경영하는데 있어서는 훌륭한 연구교재다.
1. 위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김성근 감독은 평생을 위기속에서 산 인물이다. 편안할 때라도 스스로 위기의식을 불어넣는다. 때문에 위기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 SK는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2승을 먼저 내주고 4연승했다. 2008년엔 1패 뒤 4연승. 올해 플레이오프에서는 2패 뒤 3연승을 달렸다. 단순히 뒷심이 좋고 운이 따라서만은 아니다. 최종전까지 내다보며 치밀한 전략을 짜고, 이를 정확하게 운용한 덕분이다. 때문에 초반에 밀려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리더가 흔들리지 않으니 선수들도 용기를 냈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KIA에 지긴 했지만 7차전 9회말 1사까지는 그의 기대대로 흘렀다.
2. 혁신, 끊임 없이 혁신하라
위기 관리의 핵심은 위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끊임 없이 벼랑 끝에 선다. 올해 정규시즌 133경기에서 그가 선보인 라인업은 총 111가지.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12경기 라인업은 매일 바뀌었다. 어제 이긴 전략으로 오늘도 이긴다는 법은 없다.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끊임 없이 변화를 줬다. 때로는 피로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구성원이 혁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쯤 SK는 다른 팀이 따라오기 버거울 만큼 강해졌다.
3. 터닝포인트를 마련하라
김성근 감독은 KIA와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송은범을 합류시켰다. 어깨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했다던 투수였다. 5차전에선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선수단을 철수했다. 자신의 퇴장도 불사했던 승부수였다. 이 과정에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비난을 각오하고 전화점을 마련했다. 송은범의 합류는 플레이오프 격전을 치른 SK 선수들에게 산소를 불어넣었다. 한국시리즈 사상 첫 감독 퇴장은 6차전 반격의 흐름을 만들었다. 승부에서는 상대의 불만을 살 수 있지만 경영적인 측면에서는 꼭 필요한 전략이다.
4. 내부 위기부터 다스려라
김성근 감독이 2006년 말 SK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위기는 시작됐다. 외풍이 있기도 전에 내부 균열이 감지됐다. 최고참부터 막내까지 모두 불만이 있었다. 지옥같이 강도 높은 훈련, 주전 보장 없는 선수기용 등이 이유였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기적 같은 투혼을 보인 채병용도 2007년 스프링캠프 때 팔꿈치 통증으로 훈련을 마다했다. 김성근 감독은 내부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확고한 야구철학으로 선수들과의 명분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지독하게 1승 1승을 쌓으면서 권위를 만들었다. SK가 시즌 초부터 1위를 달리자 불만의 목소리는 잦아 들었다. 내부 결집이 확실하면 외풍이 불 때 더욱 단결하는 법이다.
5. 조직의 성과를 만들어라
냉엄하게 말하면 SK는 김성근 감독 1인 체제다. 코치 이하 신인선수까지는 전부 팀원이다. 원톱 체제는 한 사람에게 책임과 부담이 쏠리는 부작용이 있지만 김성근 감독은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거기서 나오는 절대적인 권력으로 개인이 아닌 조직을 강하게 만들었다. 김성근 감독 부임 3년 내내 제 자리를 지킨 선수는 단 하나도 없다. 박경완이 빠져도, 김광현이 없어도 19연승을 해냈다. 강한 훈련을 통해 다져진 기량과 투지로 구성원 모두가 업그레이드 됐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는 김성근 감독이 고백했듯 전략적 실수가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선수들이 감독의 기대 이상으로 잘 해냈다.
6.호기에 채찍을, 위기에 당근을
신상필벌과 논공행상은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각 분야 모든 리더가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김성근 감독의 방법은 조금 특이하다. 좋은 선수에게 알맞는 시점을 잡아 채찍을 때린다. 반대로 부진한 선수에게는 적당한 때를 봐서 당근을 준다. 2007년 슈퍼루키였던 김광현이 정규시즌 3승에 그쳤을 때 김성근 감독은 쓴소리를 하지 않았다. 김광현이 이듬해 베이징올림픽 영웅이 된 이후부터는 냉정하게 대했다. 모두가 칭찬할 때 중심을 잡고 싫은 소리를 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반대로 SK 선수들은 부진하거나 아플 때, 은퇴를 고려할 때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따뜻한 말을 들었다. 가장 어려울 때 가장 두려운 사람의 격려는 무한한 힘을 준다.
7. 위기에서 교훈을 얻어라
김성근 감독은 성공보다 실패를 많이 한 인물이다. 너무하다 싶을 만큼 독하고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스무 살 때 일본에서 혈혈단신으로 건너와 50년 가까이 위기와 실패에 맞섰다. 김성근 감독은 위기와 실패를 인정하며 배울 것을 찾았다. 상대 약점을 캐고 이용하는 법을 깨달았다. 덕분에 누구보다 많은 수를 갖고 있다. 그의 최대 위기는 2002년 약체 LG를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올려놓고도 해임됐을 때였다. 김성근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 지바 롯데에서 코치로 일하며 일본야구를 자세히 들여다 봤고, 메이저리그 출신 바비 밸런타인 감독과 교감했다. 그는 84년 OB 사령탑에 오른 뒤 끊임 없이 변화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의 야구는 50년간의 위기가 만들었다. 그래서 위기에 강하다.
김식
일간스포츠 야구기자
2001년 굿데이입사, 스포츠한국, 중앙일보 기자
* 출처 : 스포츠 Pub, 2009-11-09 0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