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 지우는 혈자리 정말 있을까
[Why] 나쁜 기억 지우는 혈자리 정말 있을까
김성민 기자 dori2381@chosun.com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엄마로 나오는 김혜자는 끔찍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허벅지 안쪽에 침을 놓는다. 나쁜 기억을 없애는 혈(穴)이 있다는 것이다. 온갖 나쁜 기억들을 깨끗이 지워주는 '축복받은' 침술은 과연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없다." 안병수 대한약침학회 이사는 "영화를 보고 웃었다"며 "침 하나로 기억을 없애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권기록 상지대부속 한방병원 원장은 "허벅지 안쪽은 침을 놓을 때 잘 쓰지 않는 부위"라며 "딱 하나를 꼬집어 기억과 관련된 혈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한의학에서는 환자들의 신체를 정상적인 상태로 만들어 나쁜 기억을 극복하도록 한다. 흐트러진 몸의 균형을 침이나 약을 통해 바로 잡고 내분비 계통의 순환을 돕는 방식이다. 남동우 대한침구학회 간사는 "불안증세나 우울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심장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막인 심포를 보호하는 게 대표적인 나쁜 기억 치료법"이라고 했다. 권 원장은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쁜 기억에 대항할 수 있는 역치(?l値·반응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를 끌어올리는 것이 한의학"이라고 했다.
기억력을 높이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이윤호 경희대 한의대 교수는 "균형 잡힌 신체 상태를 유지해 기억을 방해하는 것을 없애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남동우 간사는 "몸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집중력을 강화한다"며 "사람마다 상태가 달라 집중력을 높이는 침도 사람마다 다르게 놓는다"고 했다.
현대의학에도 나쁜 기억을 잊게 하는 약이 있을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심리학과 메렐 킨트 연구팀은 지난 2월 네이처 신경과학지에 혈압약인 프로프라놀롤이 나쁜 기억을 지우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기억을 없애는 약은 엄밀히 말해 없다"고 했다.
신영철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보이사는 "그 약은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조절함으로써 기억이 강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자율신경계가 흥분해 기억이 강화되는데 약물로 이 흥분을 줄인다는 것이다. 김경진 뇌신경과학회 회장은 "기억을 떠올릴 때 그 전의 경험이 재구성돼 나타난다"며 "이미 가지고 있는 나쁜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줄여준다는 의미"라고 했다.
* 출처 : 조선일보, 2009.06.20 03:06